종원은 지숙의 연습을 깨트리지 않으려는 듯 문 옆 벽 한곳에 기대어 서서 지숙이 ？？과 밴드 ？？을 교차해서 반복하는 동작들을 지켜보았다. 지숙은 허공으로 몸을 날리며 킥과 사이드 킥과 턴과 점프들을 해나갔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의 격정적인 정지동작으로부터 지숙이 천천히 스스로의 몸을 풀어내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종원이 과장되게 큰소리로 박수를 쳐댔다. 지숙이 소리 나는 쪽을 흘낏 보았다. 종원이 특유의 과장된 미소를 지어보이며 지숙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지숙이 이내 맥 풀린 표정을 지었다. 종원이 성큼 다가서며
"안녕?"
했다. 지숙이 대꾸 없이 몸을 돌렸다. 종원이 돌아서는 지숙 앞을 막아서서 잠시 지숙을 바라보더니 씩 미소를 짓고는 빈손을 들어보였다. 마치 마술을 해 보이듯 손으로 큰 원을 그리고는 그 빈손을 지숙의 뒤쪽으로 옮겨갔다. 지숙은 유난히 큰 눈을 깜박거리기만 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지숙의 등 뒤편으로부터 흘러내린 빈손엔 어느새 꽃 한 송이가 쥐어져있었다. 종원은 그 꽃송이에 입맞춤을 하고는 넉살스런 미소를 지으며 꽃송이를 지숙에게 건네 보였다. 그제야 지숙이 어이없다는 듯 쓴 미소를 지었다. 종원은 갑자기 뒤로 쓱 물러나더니 마치 지숙의 흉내라도 내듯 ？？과 밴드 ？？을 교차해 보이고 점프해서 킥을 해 보이다가 크게 원을 그려 보이더니 순간 탁 멈추고는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반가운 표정이 하나도 없어?"
하며 물었다. 지숙이 냉랭한 표정으로 
"내가 널 반가워해야 할 이유가 뭔데?"
하고 되물었다. 종원이 
"내가 얘기했잖아?"
하더니 다시 ？？과 밴드 ？？의 동작을 해보이며
"난 언제든지 네 곁에 있을 거고 또 떠나갈 수도 있고... 그러나 다시 돌아올 거고... 그래. 지금도 너와 함께 있잖아?"
했다. 지숙이 
"못 말리는 람보 구만!"
하고 혼잣말을 내뱉고는 연습을 끝내려는 듯 흩으려놓았던 의상과 소품들을 챙겨 넣고 돌아섰다. 종원이 다시 지숙 앞을 막아섰다.
"어이! 안 말리는 마돈나! 나 보고 싶지 않았어?"
종원이 물었다. 그들은 예전에 서로의 심기가 불편할 때는 서로를 그렇게 불렀었다. 지숙이 
"꼴값도 가지가지라니까!"
하고 코웃음을 쳤다. 종원이 지지 않고
"네 눈을 보면 알 수 있어. 날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하고 우겨대자 지숙은 대답대신 흥! 하고는 탈의실 안으로 들어 가버렸다. 종원이 뒤따라 들어가려 문고리를 잡는데 딸칵하고 안에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종원은 어깨를 으쓱하고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뒤로 주춤 물러났다. 흘낏 문 위쪽을 보았다. 문 위쪽으로 조그만 창문이 있었고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있었는데 가려진 커튼의 틈새로 여린 빛이 세어 나오고 있었다. 종원은 틈새를 올려다보고는 마치 안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려는 듯이 제자리 뜀뛰기를 하기 시작하며
"일 년은 삼백 육십 오일에 사계절이 있고 열두 달이 있고 한 달은 삼십 일이고 하루는 이십사 시간이고 한 시간은 육십분이고 일분은 육십 초고 일초는... 근데 왜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일 년을 삼백 육십 오일로 했지?"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탈의실 안에서 땀으로 흠뻑 젖은 타이즈를 벗고 있던 지숙이 흘낏 문 쪽을 돌아보았다. 종원의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너한테는 그러자고 한 사람이 있었어? 왜 한마디 상의도 없이 멋대로 그렇게 나눠버렸지? 계산하기 쉽게 일 년은 천일 그리고 열 달로 하면 좋잖아? 참! 계절은 몇 개로 할까?"
지숙은 타이즈를 벗어젖히고 쓴 미소를 지었다. 저 혼자 떠들어대던 종원의 소리가 잠시 멎었다. 지숙이 조심스레 문 쪽으로 다가가 문 밖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조용하던 밖에서 탁탁-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다시 울려왔다. 지숙이 소리 나지 않게 조심스레 문을 열고 열린 문틈사이로 종원을 찾았다. 연습실 한구석에서 종원이 마임으로 거리 농구를 하고 있었다. 드리볼을 하고 패스를 하고 돌진을 하고 빙그르 돌며 슛을 해보였다. 때론 텅크슛을 하는 흉내를 해보이며 종원은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엘니뇨현상 때문에 사계절이 없어졌대. 봄하고 가을이 없어진 거야. 초여름 늦여름 초겨울 늦겨울... 그러니까 일 년은 두 계절로 나누면 되고... 한 달은 백일로, 하루는 열 시간으로, 한 시간은 십 분으로, 일분은 십초로 나누면 계산하기가 쉽잖아? 아냐. 초, 분, 시간, 일, 월, 년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거야."
지숙은 다시 소리 나지 않게 조심스레 문을 닫아걸고 땀으로 흠뻑 젖은 속옷들마저 벗어냈다. 샤워장으로 가서 샤워기를 틀었다. 세찬 물줄기가 머리로부터 온몸으로 흘러내렸다. 한참동안 흐르는 물줄기에 얼굴을 묻은 채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