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대를 뛰쳐나간 경주마들 중의 선행마로 분류되어지던 경주마들은, 그간의 경주에서 아직 한번도 선행을 뺏겨본 적이 없었던 선행능력이 뛰어난 경주마들이었기에 출발시점부터 선행마로서의 제각기의 자존심을 걸고 치열한 선행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손영무가 예상하고 그래주기를 바랬던 것처럼 8번마는 외각게이트의 불리한 출발위치에도 불구하고 기수의 뛰어난 추진력과 마필의 탁월한 선두능력으로 일직선으로 뛰쳐나가 다른 선행마들보다 한걸음 더 앞서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저절로 탄성들이 터져 나왔고 손영무도 그리되리라고 예상을 했으면서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와! 8번말 대단하다. 영무씨가 경마에 대해서 알긴 좀 아는 모양이야? 진짜로 8번말이 젤 앞으로 뛰쳐나오네?"
이혜진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런 땐 말을 칭찬해야 하는 거야? 기수를 칭찬해야 하는 거야?"
"말도 기수도 다 칭찬을 해야지."
"인마일체감의 호흡이란 거다 이거지?"
이혜진이 여전히 만족스런 표정으로 손영무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을 되풀이했다. 손영무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질주하는 8번마의 바로 뒤를 다른 선행마들이 선두자리를 뺏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바짝 뒤쫓고 있었다. 워낙 초반의 선행싸움이 치열해서 8번마와 그 뒤를 바짝 뒤쫓는 3두의 선행마들이 혼신의 질주를 했던 까닭에 전형적인 추입마들은 물론 지금까지 출주해왔던 경주들에서 비교적 선행마들과 그리 크지 않은 격차를 두고 경주를 전개해왔던 선입마들까지도 이번 경주에서는 경주전개가 진행될수록 선행마들과의 거리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어서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와! 저러다가 저 말들만 들어오는 거 아냐?"
하는 이혜진의 말처럼 마치 선행마들 만의 동반입상으로 끝나버릴 경주처럼 보였다. 마침내 8번마를 앞세우고 선행마들이 각축을 벌이며 일제히 4코너를 돌았다. 그때까지도 선추입마들은 여전히 거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탄성이 다시 터져 나왔다. 이윽고 선추입마들이 하나둘씩 4코너를 돌기 시작하여 선추입의 구분 없이 한데 어우러지기 시작하자 이미 상당한 거리차를 벌이며 결승주로를 들어섰던 선행마들의 발놀림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8번마의 뒤를 따라 안간힘을 쓰며 질주해 오던 선행마들의 질주속도가 급속하게 처지더니 제힘에 겨워 하나둘씩 선행대열에서 떨어져나가고, 경주는 어느새 제자리걸음만 해대는 선행마들을 추월하여 선추입마들이 8번마를 뒤쫓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8번마도 선두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번 9경주에서 자신의 경마에 대한 모든 것을 걸어보기로 작정했던 손영무의 꽉 움켜쥐고 있던 주먹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경마는 비록 순위의 경주라고 하지만 기록 경주이기도 한 탓에 출전하는 경주거리에 주파해낼 수 있는 경주마 제각기의 능력경주이기도 해서, 결국 결승지점에 이르러서는 경주마 제각기의 주파능력에 따른 근소한 기록차이로 승부가 결정되어진다.
결승지점에 이르자 끝까지 힘겹게 선두자리를 버텨낸 8번마를 앞세우고 4두의 선추입마들이 순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간발의 차이들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지나갔다. 사람들이 절규하듯 함성들을 질러댔다.
"8번은 들어갔는데 2번은 어떻게 된 거야?"
이혜진도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손영무는 여전히 잔뜩 굳은 표정으로 대형전광판의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형전광판에서는 선추입마들이 이미 통과해 지나쳐간 결승선을, 지나친 선행싸움으로 극도의 체력소모를 해버려 거의 탈진상태가 되어버린 선행마들이 한참의 거리차를 두고 통과해갔다.
"함께 들어오긴 한 거야?"
이혜진이 거의 울상으로 손영무를 바라보았다. 손영무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대형전광판의 화면에서 다시 느린동작으로 결승선을 통과해가는 장면들이 보여졌다. 8번마를 앞세우고 거의 동시에 4두의 말들이 머리를 내밀고 지나쳐갔다. 다시 한번 ''와!''하는 탄성들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손영무는 고개를 떨어트린 채 꽉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더욱 불끈 쥐고 흔들어보였다. 잔뜩 긴장되어 굳어질 대로 굳어져 있던 온몸의 기운이 일순간에 쑥 빠져나가며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2번이 들어 온 거야?"
이혜진이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물었다. 손영무가 떨어트리고 있던 고개를 들고 나직이 끄덕여보였다.
"어떻게 알아? 난 도대체 어느 말이 어느 말인지 모르겠는데?"
"결승선지점에서 2번마의 기수가 말머리를 밀어내며 들어왔어. 그 차이만큼 말머리가 먼저 결승선에 닿은 거야. 2번마의 기수가 다른 기수들보다 그만큼 승부력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거지. 난 그것을 믿었고 2번마의 기수는 그 기대대로 승부를 해준 거고."
"그럼 맞춘 거야?"
이혜진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두 팔을 쫙 치켜들며 소리를 지르더니 손영무를 와락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