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VS 꾼 (2)
제1화 "중독" (2)

홍성만은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이며 캔 뚜껑을 열어 벌컥벌컥 마셔대곤 쓱 한 손으로 입가를 훔쳐낸다.
"기다려 봐요. 내가 오늘은 대박 터뜨려줄 테니까."
홍성만의 말에 흡연실 한 구석에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주영호가 고개를 쏙 내밀고 인사를 건넨다.
"대박을 어디 자기가 터뜨리는 거야? 대박은 마사회서 짜고 터뜨리는 거고 우리는 거기에 맞춰먹는 거지."
"그러니까 그걸 잘 찍어내야지. 안 그래요?"
"그려. 잘 좀 찍어보자고!"
주영호가 진심으로 희망 찬 표정을 지어보이며 동조를 한다.
"참! 마사회에서 전화 못 받았어요?"
"뭔 전화…?"
홍성만의 엉뚱한 질문에 주영호의 눈이 뚱그레진다.
"나한테는 어제 마사회에서 전화 왔습디다. 오늘은 그동안 마사회에 입금시킨 돈 이자까지 붙여서 돌려줄 테니까 비밀번호 잘 외워오라고…."
"비밀번호?"
"경마는 어차피 경주마다 1, 3, 5, 7, 9…2, 4, 6, 8, 장…숫자를 잘 찍어내야 하는 거 아뇨? 그게 비밀번호지 뭐. 비밀번호 잘못 찍어내면 창구의 전산 기계들이 돈 안 내준다니까."
"원 싱겁긴…."
홍성찬의 너스레에 주영호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한 마디 덧붙인다.
"이자는커녕 잃은 돈만 돌려준대도… 아니 절반만 돌려준대도 좋겠다."
"그러니까 비밀번호를 잘 찍어내란 말입니다."
그러면서 홍성만이 예상지를 쫙 펼치는데 김달오와 이장수, 조용철이 그를 발견하고 다가오며 저마다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넨다.
"경마교수 일찍 나오셨네?"
"공부 좀 많이 해 오셨나?"
"오늘 노가 날 경주 좀 있능교?"
세 사람까지 합세하자 매점 주변은 벌써 꽉 찬 느낌이다. 그들은 마치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들처럼 살가운 표정으로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음료수 한 병씩 돌리세요. 어차피 나중에 맞추고 나면 사야 될 거 미리 마셔두지 뭐."
"얼레 오늘은 진짜 뭐 노리는 경주가 있는 모양인디?"
김달오가 눈을 껌벅이며 관심을 보이자 홍성만이 허풍을 떨어댄다.
"오늘 여기 지점 돈 다 긁어 간다니까요."
"그려. 지발 고렇게 좀 해봐라. 내 속이 다 시원허게."
김달오가 한 마디 하자 최석철은 카운트 위에 음료수 세 병을 꺼내놓는다.
"지난주 정말 정신없었습니다."
홍성만이 과장되게 고개 짓을 해보이며 운을 뗀다.
"그렇게 바뻤어, 모다 휴가철인디?"
이장수가 걱정스런 표정을 짓자 홍성만이 다시 과장된 동작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덧붙인다.
"바쁜 게 아니라 주말이면 늘 있던 경마가 쉬어 버리니까 심신의 바이오리듬이 깨지잖아요? 지난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보냈는지도 모르겠어요."
김달오가 그런 홍성만을 노려보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쯧-` 하고 혀를 차고는 목소리를 높인다.
"모조리 다 중독이여, 중독…."
그 말에 조용철이 불만스럽게 눈을 치켜뜨며 되묻는다.
"뭐가 중독이요?"
"그럼 중독 아냐?"
"이게 와 중독이요? 건전한 레저라고 마사회 놈들 흉내 낼 생각은 없지만 경마하러 온다고 중독이랄 것도 없겠죠."
"돈 깨지고 나면 노상 경마 끊겠다고 하고선 경마 날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만사 팽개치고 쪼르르 경마장에 달려오는 게 중독 아니고 뭐야?"
김달오와 조용철이 옥신각신하는 순간 "와ㅡ" 하는 함성과 함께 객장 안이 떠들썩해진다. 홍성만과 김달오의 일행들이 황급히 자리를 옮기거나 발끝을 치켜세우며 모니터를 바라본다. 중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더욱 고조되고 긴박해지는 가운데 화면에서는 결승선을 바로 앞두고 경주마들이 일대 혼전의 모습을 보이며 착순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차이로 한데 어울려 결승선을 통과한다.
"뭐꼬? 첫 경주부터 대끼리 부러진 기가?"
조용철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