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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추억의 경주마-3] - ‘포경선’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명마

한국 경마가 멈췄다. 한국마사회는 9월 1일부터 전 직원 휴업을 시행하고, 서울과 부산경남, 제주 등 3개 경마장에서 시행 중이던 무고객 경마를 잠정 중단하는 등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고 밝힌바 있다.
한국마사회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2020년 2월 23일부터 경마를 중단하고 경마관계자 생계자금 무이자 대여, 입점업체 임대료 면제 등의 선제조치를 취한 데 이어,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가 지속되던 6월 19일부터는 말산업 기반 유지를 위해 보유재원을 활용하여 ‘무고객 경마’를 재개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한층 강화된 정부 방역지침이 적용되어 고객 입장시기가 불투명해지고, 경영상황 또한 한계에 봉착, 전 직원 휴업과 무고객 경마 잠정 중단 등 비상경영에 돌입한 것.

한국경마는 오는 2022년이 되면 한국경마시행 100년이 된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경주마가 활동을 했고,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한국경마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데 있어 그 어떤 자료보다 경주마 한 두 한 두가 모두 한국경마의 역사로 대변된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한국 경마가 잠시 숨고르기에 접어든 가운데 이번 시간을 통해 과거 주요 경주마를 살펴보고, 시간 여행을 떠나본다.



국내에서 활동한 경주마 중 명마를 꼽자면 어떤 경주마를 들 수 있을까.
비공식 25연승의 주인공이자역대 최다승 기록을 보유한 72승의 ‘에이원’, 한국마사회 집계 공식 기록인 15연승의 기록 및 그랑프리 경마대회 2년 연속 우승의 주인공 ‘포경선’이 손에 꼽히는 명마로 평가된다.
오늘 소개할 경주마는 ‘포경선’이다.
‘포경선’은 80년대를 호령했던 국내 최고의 경주마 중 한 두로 평가된다. 앞서 25연승의 주인공이자 72승의 ‘에이원’이 좋은 활약을 펼친바 있으나 당시 기록은 현재로선 전산화 되지 않은 상황이라 실질적으로 ‘포경선’의 기록이 높게 점쳐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마사회에서 집계한 ‘포경선’의 통산 성적은 25전 20승 준우승 1회다. 단, 당시 한국마사회의 전산화는 1985년 이후의 성적부터 집계가 돼 ‘포경선’의 성적 또한 1985년 이후의 성적부터 반영됐다.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포경선’은 1980년 11월생으로 1983년 10월 데뷔전을 치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뷔 당시에는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데뷔 2년차인 1984년 중, 장거리에 출전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평가된다. 즉 ‘포경선’으로선 단거리에선 다소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상위군에 진입 후 늘어난 거리의 여건에서 물 만난 고기마냥 좋은 활약을 펼친 셈이다.
1985년 이후 한국마사회에서 집계된 ‘포경선’의 성적은 화려함 그 자체다. 공식 성적은 1등급에 진입한 이후의 기록으로 1985년 9월 우승을 기록한 ‘포경선’은 1987년 7월 경주까지 무려 15번의 경주에서 연거푸 우승을 기록하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비공식 ‘에이원’의 25연승에 버금가는 기록이자 소위 첫 공식으로 인정된 15연승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포경선’은 15연승을 기록하는 동안 1985년과 1986년, 2년 연속 그랑프리 경마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기록해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적수가 없음을 입증했고, 15연승을 달성하는 순간에는 무려 68kg의 살인적인 부담중량을 짊어져 월등했던 능력을 당당히 성적으로 보여준바 있다.
‘포경선’은 1985년 그랑프리 경마대회에서 우승할 당시 준우승마를 무려 10마신차로 제친바 있다. 당시 ‘포경선’의 부담중량은 62kg이고, 준우승마인 ‘광장’의 부담중량이 55kg이라는 점에서 능력차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듬해인 1986년 그랑프리 경마대회에선 준우승마인 ‘총알’ 대비 8kg의 부담중량을 더 짊어지고도 13마신 차의 우승을 차지하는 믿기 어려운 경주력을 보여준바 있다.  
소위 1980년대의 ‘포경선’은 같은 1등급 경주마와의 경쟁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 비교할 수준으로 보기 어려운 경주마였던 셈이다.
15연승 이후 ‘포경선’은 부담중량의 여파에 따른 부상으로 인해 5번의 경주에 출전해 우승 1회, 준우승 1회를 끝으로 은퇴를 하게 된다.
은퇴 후 ‘포경선’은 당시엔 이례적으로 은퇴식을 치렀고, 사후에는 박제되어 마사 박물관에 전시가 되기도 했다.

1980년대의 한국 경마 수준을 감안해 볼 때 경주마 ‘포경선’을 무조건 명마로 보기엔 물음표가 남을 수 있다. 단, 당시 ‘포경선’이 보여준 폭발력과 성적, 부담중량 대비 경주 기록 등을 감안해 볼 땐 분명 격이 다른 경주마로 볼 수 있다.
당시의 ‘포경선’이 현 시점에서 활동을 했으면 어떤 성적을 기록했을까.    




<사진제공 = 한국마사회 말혈통정보 `포경선` 마적사항>









 
출 판 일 : 2020.10.05 ⓒ KR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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