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을 풍미했던 전형적인 도주형 단거리 스프린터. 총전적 47전 11승 2위 7회 가운데 1400m 이하 경주에서 12차례 입상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순발력과 스피드를 겸비한 암말이었다. 97년 5월에 열린 니이가타자키컵 경마대회에서는 63Kg이라는 엄청난 부담중량을 짊어지고 1400m 거리를 1분 28초대에 주파했던 일화로 유명하다. 단거리에서는 전성기의 ‘대견’조차도 섣불리 우위를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발군의 도주력을 뽐냈던 ‘햇빛바람’. 98년 9월 경주마 퇴역 후 전북 장수의 민간목장에서 씨암말 생활을 시작했으나, ‘프로포슈어’의 자마를 수태한 채 갑작스런 질병으로 폐사하고 말았다. 도주형 암말로 일세를 풍미했던 ‘햇빛바람’이 차지했던 영예, 제15회 페케남컵 경마대회를 살펴본다.

스프린터들의 일대격전
96년 11월 20일 제7경주에서 C4등급 이상 마필 14두가 1200m 단거리 최강자를 가리기 위해 일대접전을 벌였다. 그 당시 서울경마장에서 활약중인 1300여 두의 마필 가운데서 ‘흥부’, ‘뉴웨이브’, ‘자생초’, ‘청정심’을 비롯한 1등급부터 4등급까지 단거리에서 최강으로 평가받던 마필 14두가 총출동, “최고의 스프린터”를 가리는 자리여서 경마관계자를 비롯한 10만여 경마팬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치러졌다. 이미 1200m 거리에서 1분 14초 중반의 주파기록을 보유한 7번 ‘햇빛바람’이 경주 당일 최고 인기마로 지목됐으며, 출발게이트가 열리자 제일 먼저 선두를 점한 것도 역시 이 마필이었다. 한번 선행을 잡으면 후속마들을 멀찌감치 따돌려버리는 도주형 마필의 특성상, ‘햇빛바람’은 시종 여유 있는 간격을 유지하며 3코너에 접어들었다. 11번 ‘흥부’, 9번 ‘뉴웨이브’, 4번 ‘자생초’ 등의 추격과 발빠른 외곽 추입으로 선두권에 합류한 10번 ‘백봉산’의 견제가 있었으나, 1200m 거리가 짧은 듯 특유의 뚝심으로 내달린 ‘햇빛바람’의 독주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결승주로에 접어들어서도 후속권 마필들의 추입을 허용하지 않으며 2위마 ‘백봉산’을 1마신 차이로 남겨두고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다. 경주 전 ‘마리조아’가 보유하고 있던 1200m 최고 주파기록(1분 13초 7)의 경신 가능성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으나, 평범한 주로 상태와 맑은 날씨 속에서 1분 15초 4의 아쉬운 기록을 남겼다.

하재흥 조교사
83년 6월 조교사 데뷔 후 ‘뷔로라’로 96년 무궁화배 우승을 차지하며 경마대회 우승의 첫 테이프를 끊은 하재흥 조교사는 넉 달 후 ‘햇빛바람’으로 다시 한번 시상식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우창구 기수
‘사현정’(93 스포츠서울배), ‘도롱이’(93 JRA트로피), ‘삼각’(94 스포츠서울배) 이후 2년만에 ‘햇빛바람’으로 경마대회 우승의 영광을 재현한 우창구 기수. 추입형 각질의 말몰이에 두각을 나타냈던 그간의 전력에 비춰 볼 때 ‘햇빛바람’은 그에게 선행마 기승술에도 눈을 뜨게 해준 경주마였다.    

【손성호 기자 ssh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