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그랑프리 주역들,‘가속도’에서 ‘신세대’까지

수많은 명마들이 과천벌을 호령해왔다. 기억 저편의 ‘에이원’, 14연승으로 추정되는 ‘포경선’, 얼마전 까지만 해도 11연승으로 과천벌 최다 연승기록을 보유했던 ‘가속도’ 그리고 그 기록을 경신하고 새로운 최다 연승에 도전하고 있는 ‘새강자’까지.
무수한 명마들이 한시대를 풍미했다.
뚝섬에서 과천벌로 이전할 지 어언 10년, 이와 때를 같이해 20세기 마지막 그랑프리를 한 주 앞둔 시점에서 90년대 패권을 차지했던 명마들을 되돌아본다.

’91 적수 없어 은퇴한 ‘가속도’
홍순철 조교사, 김창옥 기수

‘상대할 적수가 없다’
경마에서는 생각치도 못할 발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실제로 있었고 그로 인해 은퇴한 말이 바로 ‘가속도’다.
현 과천벌 최다 연승마(12승) ‘새강자’가 있기 이전 ‘가속도’는 11연승이란 대기록을 작성했다. 그리고 그랑프리 2연패까지도 달성했다. ‘가속도’가 기록한 총전적은 13전12승, ‘새강자’와는 달리 데뷔전 우승부터 줄 곧 11연승을 달렸다.
그러나 12전에서 연승 행진이 무너졌고 그후 91년 그랑프리를 고별무대로 과천벌을 떠났다.

’95 새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챔피언 ‘대견’
최혜식 조교사, 박태종 기수

「언제의 ‘대견’이 아직도 ‘대견’인가」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대견’은 현재도 1군 강호로 군림하고 있다. ‘대견’의 최전성기는 95년. 경주에 출전했다하면 출발에서의 1등이 결승선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대견’이 과천벌을 호령할 시기는 강호들이 다소 침체해 있던 상태다. ‘고대산’, ‘호동왕자’등이 있었으나 이미 노령화에 접어들었고 92년부터 94년까지의 우승마들은 전력 기복이 심했다. 그래서 새로운 강자가 필요했는데 그 대표주자가 바로 ‘대견’이었다.
강력한 라이벌 ‘지구력’에게 94년은 넘겨줬으나 95년 패권을 차지하면서 과천벌 최고마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96 믿기지 않는 코차이 역전‘훌라밍고’
박덕준 조교사, 김옥성 기수

96년 그랑프리를 지켜봤던 팬이라면 ‘훌라밍고’의 막판 역전극을 잊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결승선 전방 10m지점 압도적 인기를 모았던 ‘금맥’의 우승은 확실시됐다. 그러나 외곽에서 믿기지 않은 추입으로 막판 역전을 시도했던 마필이 있었으니 바로 ‘훌라밍고’였다. 결국 사진 판정에 들어갔고 결과는 ‘훌라밍고’의 코차이 우승.
‘훌라밍고’는 그랑프리 이전 SBS배를 석권한 바 있었다. 95년 ‘핵탄두’가 비록 그랑프리에서 우승은 하지 못했으나 SBS배 우승 이후 그랑프리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던 전례를 비춰볼 때 ‘훌라밍고’는 ‘SBS배=그랑프리’라는 새로운 공식을 창출해 낸 것이다.

’92 파란을 일으켰던 ‘춘풍’
이인호 조교사, 김성현 기수

92년 그랑프리는 말 그대로 파란이었다. 7전7승의 ‘호동왕자’와 명마‘차돌’이 버티고 있어 입상은 이들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정작 레이스는 복병마 ‘춘풍’을 위한 것이었다. 4코너까지 체력안배를 했던 ‘춘풍’은 막강한 추입력으로 이들을 모두 물리쳤다. 특히 결승선에서의 ‘호동왕자’를 코차이로 역전시킨 것은 96년 ‘훌라밍고’를 연상시킨다.

’93 92년에 이은 또하나의 이변 ‘기쁜소식’
강석철 조교사, 이상근 기수

‘기쁜소식’의 93년 그랑프리 제패. 이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비유할 만한 사건이었다.
즉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10대는 물론 가요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신예. ‘기쁜소식’이 바로 이에 해당됐다. 그랑프리 전 2군 경마대회였던 JRA 대회에서 7위를 기록했던 ‘기쁜소식’은 이 대회에서 ‘고대산’, ‘대기록’, ‘호동왕자’ 등 높은 1군 벽을 단숨에 뛰어 넘고 패권을 차지한 것이다.

’94 막강한 지구력 발휘했던 ‘지구력’
김일성 조교사, 임대규 기수

94년 그랑프리는 신예 4세마 ‘지구력’을 위한 무대였다. 막강한 순발력은 아니었지만 초반 선두권 가세를 결승선까지 몰고가 결국은 선행마들을 잡아 버리는 엄청난 끈기. 마명 그대로 지구력 자체였다.
그러나 과도한 부담중량에는 속수무책, 다음해 무궁화배 경마대회에서 61kg의 부담중량을 버텨내지 못하고 무너진 이후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현재 ‘대견’이 활약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쉬움이 남는다.

’97 경마대회 4관왕‘풀그림
김충근 조교사, 안병기 기수

97년은 ‘풀그림’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풀그림’은 5연승 뒤 스포츠조선배에서 처음으로 패배를 맛봤다. 당시 상대마들은 ‘대해’, ‘싹스킹’. 이후 스포츠서울배에서도 ‘청파’와 ‘서운’에게 1, 2위 자리를 넘겨줬다. 그러나 일간스포츠배에서 2위마 ‘청파’를 7마신이란 대차로 물리치고 제2의 도약을 시작했다. 그 기세는 문체부장관배를 거쳐 그랑프리까지 이어졌다. 이후 다음해 마주협회장배까지 경마대회 4관왕의 위업을 이룩했다.
‘풀그림’하면 생각나는 마필이 바로 ‘신세대’다. ‘신세대’의 도주와 ‘풀그림’의 추격. 그 경합 거리는 수백m 달해 경마팬들에게 흥미 진진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현재 ‘풀그림’은 휴양 이후 재기전을 치른 상태다. 예전의 파괴력이 살아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98 과천벌 최고 도주마 ‘신세대’
고옥봉 조교사, 이성일 기수

거침없는 질주, 과천벌 최고 도주마 ‘신세대’. 이 마필은 타 마필과는 달리 전성기가 지난 7세 때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신세대’가 이처럼 왕좌에 늦게 오른 이유중의 하나는 ‘풀그림’이란 상대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발군의 도주력이 ‘풀그림’으로 인해 4코너를 선회하기도 전에 빛을 바랬다. 그러나 ‘풀그림’이 휴양에 들어간 이후 98년에는 도주에 걸림돌이 될 만한 상대가 없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현재도 최고마로서 조금도 손색없는 경주를 펼치고 있고 그랑프리 2연패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

99년 그랑프리는 현재 11두의 최고마들이 1차출전 등록을 마친 상태다.
20세기 마지막 그랑프리로서 역대 그랑프리와 비교해 볼 때 국산마인 ‘새강자’가 외국산마들의 아성을 넘고 인기 1위마로 등극했다.
2000년을 앞두고 자축할만한 결과라 할 수 있으며 과연 99그랑프리는 누구에게도 돌아갈 지 모든 관심이 과천벌에 모아지고 있다.
【김대유 기자 dykim@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