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세력 재편에 따른 경마폐지론
6.25 전쟁의 종전과 함께 뚝섬경마장으로 옮겨진 한국경마는 전후의 어려웠던 경제여건으로 입장인원의 감소, 매출액 저하 등 극도의 불황기를 보냈지만, 그 당시 자유당 치하의 정치, 사회적인 무질서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불안요소였다. 1954년 10월에서 60년 5월에 이르는 6년 동안 마사회장은 자유당 중앙당의 차장급 간부가 도맡았고, 경마장은 자유당의 전위대 역할을 했던 일명 ‘동대문 사단’의 이정재 일파가 장악하다시피 했다. 이렇듯 마사회와 경마장이 자유당 세력권에서 놀아난 하수인이라는 사회적 혐오감이 팽배했던 상황에서 4.19혁명과 5.16 군사쿠데타의 정치세력 교체상황은 한국경마 자체를 존폐의 기로에 처하게 한다. 4.19의 소용돌이 속에 중단된 경마는 6월까지 시행허가가 나지 않아 문을 닫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교사, 기수들이 당시 남대문에 있었던 농림부 청사에서 농성을 벌이는 사태 끝에 재개됐으나, 그동안 許 政 과도정부는 경마폐지에 대한 안건을 각의에까지 상정시켜 경마장의 폐쇄를 추진중에 있었다. 하지만 이런 폐지론 속에서도 경마가 자유진영 여러 국가에서 성행하는 대중오락임을 강조하고 존치를 주장하는 견해도 만만치 않아서 경마는 곧 재개됐다. 그리고 다시 한번 경마폐지론이 고개를 든 시절이 있었는데, 바로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소장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이었다. 이때의 폐지론은 전과 달리 경마의 본질적인 도박성을 들어 퇴폐풍조의 일소를 혁명공약의 기치로 내건 군사정권하의 상황에서 경마가 사회적으로 백해무익하다는 것이 그 논지였다. 그러나 경마가 세계적으로 공인되는 대중오락으로 인정받던 국제 정서에 비춰, 경마장의 폐쇄는 곧 외국의 비웃음거리로 지탄을 받는다는 옹호론도 일부 최고위원 사이에 있어서 결국 위기를 모면하게 된 것이다.
법제화를 통한 한국경마 위상격상
존폐의 위기를 무사히 넘긴 우리 경마는 5.16쿠데타 2년째를 맞는 1962년 1월 20일 국가재건최고회의가 한국마사회법을 제정, 공포함으로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당시 입법권을 행사하던 최고회의는 61년 가을부터 구법일소 작업을 전개하면서, 1932년 일정시대부터 이어온 조선경마령과 1942년의 조선마사회령을 대체할 새로운 법령을 제정한 것이다. 해방 후 20년 가까이되도록, 더욱이 주권을 회복하고 독립정부를 수립한 후에도 일정하의 총독부령을 모법으로 삼아온 한국경마가 순수한 우리의 법률을 갖게 된 것은 큰 의의를 갖는다. 이때서야 비로소 조선마사회에서 한국마사회라는 현재의 시행체로 탈바꿈 한 것이다.
경마장 뒤흔든 임화수
자유당 정권 말기에 각종 선거부정과 이권사업에 정치권의 하수인으로 등장한 깡패세력. 그 무질서한 시대에 경마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5.16 군사재판으로 이정재와 함께 처형된 임화수도 뚝섬경마장의 마주로 행세하며 각종 경마부정의 원흉으로 지탄받았다. 그 대표적인 일화가 경마계의 원로기수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1800m 중거리에 강한 김근배 육군 준장 소유의 ‘낙동강’이라는 말이 우승후보로 꼽힌 경주가 있었는데, 그 경주에 임화수 소유의 ‘카나다’와 ‘한라산’ 2두가 같이 출전했다고 한다. 수하의 기수를 통해 ‘낙동강’에 기승하는 기수에게 인환권(현재 예치권)을 보낸 임화수는 빠질 것을 지시했으나, 순순히 응하지 않자, 경주거리를 2000m로 바꾸어버렸다고 한다. 임화수는 자신의 말이 출전하는 경주에서 상대편 기수와 마주를 협박, 폭행했던 일은 비일비재했다고 뚝섬초기 시대에 전해진다.
특별경주 상금은 쌀가마 최고인기
조랑말이 뚝섬경마장에서 완전 퇴역한 67년까지 외국산 경주마의 도입 못지 않게 조랑말의 수급 또한 경마관계자들의 큰 걱정거리였다고 한다. 초기에 제주도에서 30두씩 들여오기도 했으나, 제주도와 가까워 조랑말이 많았던 전라도까지 조교사, 기수들이 직접 말을 구해왔다. 그 당시엔 개인마주제였고, 65년까지 조교사, 기수들이 실질적인 마주를 겸하던 시대였다. 1일 입장객이 3~5백명 수준이고, 매출액이 50~60만원 수준이었다고 하니, 조랑말 중에는 아침에 경주를 뛰고 이삿짐과 쌀배달 등 부업을 한 다음, 다시 오후 경주에 참가했을 정도로 경마여건은 열악했다. 이만큼 경주 상금이 박하다보니, 5.16쿠데타 이전에 1년에 1~2회 있는 경주로서 쌀 한가마를 상금으로 주는 특별경주가 가장 인기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진 계가속보경주
조랑말 시대에 스피드가 낮아서 경주에 흥행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가 있었는데, 1956년부터 57년 사이에 시행되다 중단된 계가속보경주가 있었다. 경주마가 마차를 끌면서 구보가 아닌 속보로 걷는 경기인데, 마치 영화 ‘벤허’에 나오는 것처럼 마차에 기수가 타고 걷는 것으로 3보 이상 구보하면 실격되는 규칙을 가진 경주였다. 당시 10대의 마차를 제작, 하루의 하이라이트인 12경주에 실시하여 경마팬들의 대단한 호응을 얻었다고 하는데, 마필의 부상, 도태 등이 심해서 곧 중단되고 말았다.
【손성호 기자 ssho@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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