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부터 봄, 가을에 주기적으로 형태를 갖춰 시작된 경마는 1928년 신설동 시대에 접어들면서 6,25전쟁 전까지 약 23년간 명맥을 유지하며 그 뿌리를 내린다.  뚝섬시대의 개막으로 근대화 된 경마는 현재의 과천벌로 정착되며 전국민적 레저스포츠로 도약한다.

한강상설경마장 시절
유유히 흐르는 한강 옆으로 뿌옇게 모래를 튀기며 질주하는 말들, 그리고 관중들의 함성소
리.  바로 1922년부터 1928년 사이에 시행된 한국경마의 초기모습이다. 일제시대에 처음 시
작된 경마는 서울, 원산, 군산, 평양, 대구, 부산 등지에서 강변과 연병장을 경주로로 삼아
전국적으로 이뤄졌다. 이러한 소규모 경마구락부의 중심이었던 한강상설경마장은 여름철의
상습적인 수해로 경주로가 자주 유실되었고, 한강홍수는 필연적으로 새경마장의 등장을 재
촉케 했다.  만 6년간 시행된 짧은 기간의 경마장이었지만, 우리 나라 경마의 싹이 트고 자
라게 한 요람으로 평가된다.

신설동 경마장시대
1928년 9월 22일부터 1950년 6.25전쟁까지 23년간 중앙경마장 구실을 해온 신설동 경마장은
1,200m 주로(1,600m 까지 확장)에 2층 관람대와  150두 수용규모를 갖춘 마사5동, 기타 부
속 건물을 갖춘 수준급 시설이었다. 이곳에서 한국경마는 그 골격을 갖추었고, 숱한 역사적
변천과 애환이 명멸한 곳이기도 하다. 1932년에 조선 경마령의 선포로 전국 9개 경마장이
경마협회에 소속되어 조직적으로 운영됐으나, 1942년 일제의 진주만 공습에 잇따른 태평양
전쟁의 시작과 함께 한국경마도 새롭게 변모하게 된다. 군용마의 생산,관리를 경마와 일원화
시킨 일제는 조선총독부 소속 아래 조선마사회(현재 마사회의 전신)를 탄생시킨다. 조선마사
회령에 근거를 둔 이 단체의 창설로 전국에 분산되어 있던 경마구락부는 통폐합되고, 이때
부터 현재와 같은 단일시행체가 된 것이다. 한 두 당 7,300원 정도의 조랑말로 경주가 시행
됐고, 일제시대 부유층이 마주였던 순수 개인마주제였다. 마권발매는 말(言)로서 베팅할 말(馬)
에 돈을 걸었고, 경주가 시작되기 전에 주판으로 배율계산을 해 흑판에 기재한 다음, 도르레
를 이용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위치에까지 들어 올렸다. 그 당시에도 토, 일 이틀경마였고,  
최일성 기수(현 최혜식 조교사 선친)가 기승할 때면, 많은 부녀자들이 몰릴 정도로 기수들의
사회적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이윽고 8.15 광복으로 일본인 지배아래 있던 조선마사회가 한국마사회로 주체성이 회복되었고, 1945년 10월 20일에 일본인을 배제한 최초의 한국경마가 시작됐다. 이렇게 해방 후 수개월 내에 경마가 조기 시행된 연유는 그무렵 신탁통치를 맡았던 미군들의 경마열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경마대회에서 최고 인기 높았던 상이 `하지 중장상`이었다고 하니, 일본인에 의해 시작된 경마가 미국인에 의해 다시 주체성이 훼손된 기간이었다.
해방직후 마사회 소유 경마장은 서울, 부산, 대구, 군산 등 4개 경마장이 있었으나, 경마장
구실을 제대로 한 것은 서울뿐이었다.
요즘은 엄중한 단속으로 불법화 된 맞대기, 사설경마같은 것들이 버젓이 경마장 안에서 유
행처럼 용인되던 시대가 있었다. 미군정으로 재개된 해방 직후의 신설동 경마장에는 미군
고위 장교부터 경마장 옆의 채소밭 가꾸던 농부에 이르기까지 맞대기가 유행했다. 그리고
당시 혼란스런 사회상황을 틈타 활개를 치던 깡패들이 경마장에 까지 폭행을 일삼던 일은 비일비재했다.
23년간의 신설동 경마장은 6.25 전쟁으로 군용비행장화 되어 명맥이 끊기고, 1953년 휴전 후
모든 경마인들의 염원으로 뚝섬 경마장을 짓게 된다.

신설동 시대 경마장의 주먹들
해방후 극도의 혼란속에서도 두달남짓한 짧은 공백끝에 재빨리 경마를 시행할수 있게한
공로자이자, 말간의 보스, 혹은 독재자라 불렸던 인치복.  일정시대에 일본인의 후원으로
마정회의 회장이 되었고, 한국인 최초의 조교사이기도 했다. 해방후 대도시마다 이동하면서
경마를 시행할때, 지방의 깡패들을 주먹으로 제압하여 경마의 원활한 시행을 지원했으며
조교사, 기수들을 옭아메어 경마장을 주무른 실력자였다. 그리고 깡패들의 폭행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손가락을 자른 계윤일 기수의 단지소동에서 알수있듯, 혼란한 사회 상황은 힘과 주먹이 앞서는 논리가 지배했고, 경마장도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으며 같이 부침을 거듭했다.


줄 그어놓고 깃발 내리던 방식의 옛날 발주기
80년에 가까운 경마역사에서 현재와 같은 철제이동식발주기가 보급된 것은 불과 20년 남짓
하다. 그 전엔 어떤 방식으로 발주했을까? 경주마들을 발주지점에 나란히 세워놓고, 발주위
원이 들고있던 깃발(紅, 靑)을 내리던 방식이다. 1930년대 신설동 경마장에 호주에서 고안된
발리아식 발주기가 최초의 기계화된 발주기로 도입되었다. 주로의 양쪽에 기둥을 세우고 고
무줄을 양쪽으로 연결시켜 스프링장치로 줄이 위로 올라가게 하는 단순한 방식이다.
하지만 이 호주식 발주기는 발주에 시간이 많이 소요됐고, 선행마들이 급출발 할 때 기수가
줄에 걸려 부상이 입는 사고가 일어나는 단점이 있었다. 해방후에는 일본인들이 소유했던
경주마의 고갈로 재래마가 경주에 투입됨으로서 호주식 발주기는 기피됐고, 625전쟁 후에는
다시 주립식 발주기로 환원되게 된다. 1969년이 되서야 철제이동식발주기가 도입됐는데,
이 DM식 12형 발주기는 일본에서 설계도만 얻어서 서울마장동의 한 철공소에서 제작한 것
이었다. 제작비에 160만원을 들이고, 견인용 차량을 60만원에 구입하여 운용하게 된
이 발주기는 70년 대 초까지 그 역할을 하고 퇴역했다.


작 성 자 : 손성호 notinell@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