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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대에서 바라보는 모니터에서의 출발은 말이 원을 그리며 몸을 풀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 출발대에 말을 넣고 레이스를 시작하는, 사무적이고 딱딱해 보였다. 수많은 경마팬의 눈과 귀가 집중된 출발대에서는 여러모로 긴장을 늦출 수 없어 엄격하고 하향식 소통에 능숙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출발전문위원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출발대를 방문해보니 관람대에선 느낄 수 없었던 점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매번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출발위원들과 기수가 하는 인사에는 정(情)이 묻어났고, 신속하면서도 공정한 경마를 위한 출발위원들의 매 순간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고를 고집하는 장인이 있었다.
오전 9시 30분. 출발전문위원인 전문정 차장을 만나 출발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눌 수 있었다. “경마팬들은 항상 모니터를 통해 출발하는 것을 봅니다. 카메라로 찍힌 영상을 보면서 ‘아, 부정이 있는 것 아니냐’ 라는 오해를 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직접 현장을 경험한다면 최소 400KG대의 동물을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겁니다”라며 평소 출발에 대해 의심받는 것이 안타깝다고 심정을 털어놨다.
▲ 출발업무에 앞서 출발위원들이 스트레칭을 하고있다.
10시 20분. 출발대 뒤편에 마련된 버스에서 출발위원 4명을 포함한 36명의 출발관계자가 모여 오늘 경주에 출전하는 경주마의 동영상 관람과 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혹시라도 발생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악벽마를 어떻게 다룰지, 어떤 순서로 출발대에 집어넣을지 함께 고민했다. 회의가 끝난 후 출발위원들은 버스 앞에 모여 다 함께 스트레칭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과 경주마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출발전문위원들은 마지막 경주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기에 일하는 내내 근육통에 시달리는 것은 기본이고, 심하면 대형병원에서 수개월간 입원을 하는 부상을 당하기도 하기에 경주를 앞두고 출발위원에게 스트레칭이란 필수적인 절차였다.
10시 35분. 서울 제1경주가 시작되기 전, 김기우 출발전문위원에게 잠시 출발대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설명을 들으니 단순한 철판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던 ‘그것’은 말의 세심한 것 하나하나까지 생각하는 기계였다. “출발대 8칸짜리 하나가 7억 정도로 현재 서울경마공원에서 사용하는 2대를 일본에서 14억을 주고 수입해왔습니다. 일반 경마팬들이 보기엔 저 쇳덩어리에 돈을 다 줬을까 하는데 확실히 그 값을 합니다. 지금도 부산은 국산을 쓰고 있지만 소음, 무게, 정확도, 내구성 등에서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JSS라고 해서 JRA(일본중앙경마회)의 자회사 중 출발대 회사가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와 달리 경마장이 워낙 많아서 출발대만 만들어도 회사 운영이 가능합니다”라며 어쩔 수 없는 일본에 대한 부러움을 내비쳤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경마에서 사용하는 모든 장비를 순수 국산 장비로 대체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 발로 주로를 파봤다.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주로를 밟아보고 긁어보면 달라”
렛츠런파크 서울주로는 일년내내 쉼없이 진행되는 경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새벽훈련이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주로가 쉴 시간이 없어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너무 다져져 있었다. 주로를 대충 발로 파봤을 때에도 금방 딱딱한 부분을 드러냈다. 주로의 다져짐은 말이 빠르게 달릴 수 있게 하지만 미끄럼 현상을 만들어 말들이 넘어지기 쉬운 길을 만들어 위험한 부분도 존재했다. 또한 500kg에 육박하는 체중과 달릴 때 가해지는 부담으로 인해 잦은 부상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출발위원은 이를 막기 위해 주로 아래쪽에는 일본어로 ‘킷파’라고 하는 미끄럼방지대를 매설해 출발할 때 말이 넘어지는 사고를 방지한다고 알려주었다. 이처럼 출발전문위원들은 기본적으로 출발을 전문적으로 담당하지만 경주마의 부상까지도 고려하는 세심함을 보이기도 했다.
10시 40분. 제1경주 출발시간이 다가오면서 출발전문위원들의 움직임도 서서히 바빠지기 시작했다. 출발대 문을 닫고 번호판을 끼우는 등 출발위원들은 각자 맡은 업무를 하며 출발 준비를 했다.
▲ 출발위원과 출발대로 들어오는 기수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10시 45분. 말과 기수가 출발대에 도착했다. 기수들과 출발위원들이 나누는 인사에서는 다정함 사이에서도 언제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과 기수들의 승부사 기질 등 다양한 감정들이 솟아났다. 얼굴이 잔뜩 굳은 기수들과 흥분해서 콧바람을 심하게 몰아쉬는 말을 보고 있자니 덩달아 긴장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10시 50분. 확성기에서 나오는 “발매가 마감되었습니다”라는 음성을 알림 삼아, 본격적으로 경주마들을 출발대에 집어넣는 작업이 시작됐다. 애초 마구잡이식으로 출발대에 진입하거나 진입거부 등의 어려움이 반복되리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하나둘씩 경주마들이 출발을 위한 제자리를 찾아갔다.
10시 51분. 출발위원들이 조심스럽고도 신속하게 모든 말들을 출발대에 넣었다. 멀리 있는 깃발이 차례로 착착 올라가더니 출발대에 제일 가까이 있는 깃발이 마지막으로 올라갔다. 깃발 오름이 가까워질수록 행여나 숨소리도 방해가 될까 입을 막았다. 순간 정적이 흐르더니 출발대가 내는 맑은 기계음과 함께 말들의 질주가 시작됐다.
김기우 출발전문위원은 “출발위원은 첫째는 사람의 안전, 둘째는 고객들을 위한 박진감과 공정성을 생각해야 한다”며 출발대를 보면서 눈을 반짝였다. “근육통은 물론이고 항상 햇빛을 봐야 해서 눈물건조증까지 시달리고 있지만 전문적으로 말을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며 흡사 장인(丈人)의 모습을 보였다.
▲ 6월 20일 3경주에서는 `포비선더`가 고착했다.
취재한 날인 6월 20일은 약간 흐린 날씨 덕분에 3경주까지 참관할 수 있었다. 3경주에서 ‘포비선더’가 출발대에서 고착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당황하기도 했다. 다른 말들이 모두 출발대를 박차고 힘찬 질주를 했지만 ‘포비선더’는 자신의 출발대 안에서 그저 나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모습에 기승한 기수와 출발대에 시선을 고정한 출발전문위원들 모두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포비선더’를 밀기도 해보고 때려도 보며 실랑이를 벌였고 `포비선더`는 한참 늦게서야 출발했다. 상황이 마무리되자 출발위원은 “허허, 기자님들 오셔서 좋은 거 보여주려고 그랬나 봅니다”라며 허망한 웃음을 지었다.
경마일이 되면 어김없이 36명의 출발관계자들이 출발대 앞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모든 말이 1등을 목표로 일제히 뛰쳐나간 출발대 앞으로 길게 뻗은 경주로를 바라보며 출발관계자들의 출발대에 녹아있는 땀은 한국경마를 더 높게 뛰게 할 디딤돌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출발업무참관은 한국마사회 홈페이지(http://race.kra.co.kr/index.html)에서 신청할 수 있다.
황수인 기자
작 성 자 : 황수인 nius103@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