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은 사회 내부를 멍들게 하고 부조리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사회든 편견과 아집이 깊게 뿌리박혀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보니 어느덧 깊은 편견에 사로 잡혀 고정된 틀 속에 사고방식을 가둬 두려는 경향이 짙게 배어있다.
이제 단단한 편견의 껍질을 깨고 자신 만의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을 만나보자.
마사회 입사 5년차를 맞이한 제주 아가씨, 강정민은 사회의 고집스런 시선이 싫은 사람 가운데 하나다. “조직에서 개인의 역할은 성(性)구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능력에서 비롯된다”며 당차게 내뱉은 그의 목소리엔 넉넉한 자신감이 묻어있다. 편집실 사진 담당자로, 경마일이면 착순심판위원으로, 그리고 마사회의 한 조직원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의 어디에 이런 자신감이 숨어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편집자주>

“오랜만에 만나는 선배나 친구들을 만나면 늘상 그래요, ‘너 요새도 바쁘지?’처음엔 정말 바빠서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의례적으로 나는 바쁜 사람이 돼버렸어요”
제주경마장 사진담당 임시직으로 시작해 어느덧 전문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강정민씨는 늘 바쁜 일상속에 지낸다. 일 욕심, 사람 욕심, 배움에의 욕심이 남들의 두배이상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처음 만진 것은 대학 입학 후였다.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도, 또 숨겨진 관심이 있었던 것도 사진학과를 선택한 후에야 알았다. “평생의 업(?)이 될 줄이야…(웃음)”
이제 카메라는 그에게 있어 신체의 일부와 같다. 항상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낯선 곳에 카메라 없이 섰을 때, 그 막막함이란….
그래서 그는 지금 매우 행복하다. 매달 마사회 사보 「굽소리」의 표지 사진 때문에 고심하지만 ‘하고 싶은 일, 꼭 해야하는 일’을 하는 지금이 심심할 때보다 낫다.
희망의 2000년을 맞이해 그는 나름대로 알찬 계획들을 실천 중이다.
“저희 「굽소리」 1월호 표지 봤나요?” 컴퓨터 모니터 속에 질주하는 경주마와 함께 발주위원이 힘찬 발주를 알리는 모습이 합성, 인터넷 열풍의 분위기를 한껏 전하고 있다.
“새천년을 맞아 신선함이 전해진다고 칭찬 많이 들었어요. 고민 좀 했거든요(웃음)”
이밖에도 그는 사내에 의외로 사진에 관심갖는 사우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지난달 부터 「사진 담기」라는 소그룹을 결성해 강습을 하고 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카메라의 기능부터 익히게 한 후 매주 과제를 부여해 아마추어인 회원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는 것. “지난주에는 일상 속에서 수자 1부터 10까지를 표현할 것을 과제로 정했어요. 좀 어렵지요?(웃음)”
그가 경마일에 하는 일은 바로 착순판정 카메라 담당.
관람대 6층 심판실에서도 좀 더 높은, 다락방 같은 곳에, 결승선 통과 지점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곳에 착순판정실이 있다.
3대의 카메라가 함께 돌아가는 이곳에서 0.1mm의 차이도 정확히 가려내는 게 그의 일이다. 게이트가 열림과 동시에 작동돼 결승선 통과까지 매 순간이 정지 화면으로 찍히는 신기한(?) 카메라가 매서운 눈초리로 정확히 순서를 판가름한다.
경주가 끝나자마자 커튼을 닫으면 그곳은 순식간에 암실로 변한다.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한 정도면 현상에 그치지만 3∼4두의 경주마가 거의 덮치듯이 결승선을 동시에 통과하면 인화, 확대 작업까지 해야한다. 그래봐야 걸리는 시간은 고작 2분에서 3분. 이 사진을 통해 순위가 가려지면 심판실에서는 순위를 확정하고 다음 경주 마권 발매를 알린다.
한 치의 오차도, 실수도 용인되지 않는 곳이다.
공교롭게도 기자가 찾은 이날은 첫 경주부터 2두가 동시 골인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마지막까지 사진판정에 걸렸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던 이상한 징크스란다.
“처음엔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마사지역에 여자가 올라가면 재수없다라는 편견이 스스로를 더 위축시켰지요. 하지만 모든 일은 결국 자신이 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불필요한 편견과 오해를 깨뜨리도 한번쯤 치러야할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을테니까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제주 육성 목장 전경을 찍어야 하는데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좀 처럼 카메라 안에 전경이 잡히질 않는 것이다. 둘러보니 인근에 제법 높아보이는 야산이 있었는데 그 꼭대기에 서면 시원스런 전경이 들어올 것 같아 제주경마장 운전기사에게 함께 가줄 것을 부탁했다.
야산 입구까지 동행해준 운전기사는 이런 말을 내뱉더란다. “전에 계시던 남자 분은 30분만에 올라가던데, 아가씬 줄잡아 한 시간은 걸리겠군…”
트라이포드(카메라 삼각대)를 메고 카메라를 들고… 신발 끈을 바짝 조여 맨 다음 부지런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적어도 30분을 넘기고 싶진 않아서 이마에 땀 흐르는 것 조차 잊고 그저 오르기만 했다. 정상에 도달한 후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출발한 지 꼭 20분이 지나 있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 지 자신만만한 성취감이 느껴질 것이다.
원하는 각도에서 맘껏 전경을 찍고 내려오니 운전기사는 사뭇 미안한 표정이다. “내 다 지켜봤는데, 정말 잘 오르더군요. 아까 그런 말 해서 미안합니다”
이런 사소한 일로 여성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쉽사리 뿌리 뽑힐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각은 충분히 정화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자기 하기 나름이다.
【이희경 기자 pinklady＠krj.co.kr】

작 성 자 : 이희경 violet@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