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마장엔 ‘새강자’ 신드롬이 불고 있다.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해 한국 경마 수준을 10년 이상 앞당긴 그의 이름앞에 경이로움을 감추지 못한다. 새삼스럽게 국산마 열풍이 불어닥친 것도 다름아닌 ‘새강자’의 행복한(?)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이제 갓 4세가 된 ‘새강자’를 이만큼 키워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따랐을까?
“말이 워낙 온순하고 성실해서…”라지만 16조 마방의 헌신적인 노력은 불보듯 훤하다.
쉬는 날 없이 마방에서 목욕시키랴 컨디션 체크하랴 마음도 몸도 분주하다.
40여년 한평생을 경마장에서 보낸 박원선 조교사와 함께 ‘새강자’이야기, 경마 이야기, 그리고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경마장이 참 많이 달라졌어요”
45년을 한결같이 지내온 이곳, 경마장이 이제는 집같다는 박원선 조교사.
좋은 기억도 아픈 기억도 늘 함께 했지만 소리없이 변해온 시간이 조금은 낯선 듯 첫 마디를 뗐다.
“왜정(일제) 시대를 마치고 7백여명의 경마팬이 모인 가운데 뚝섬 경마장이 역사적인 개장을 맞았지요. 신설동 시절부터 기수였던 선배를 따라 자연스럽게 경마장에 입사해 궂은 일, 힘든 일도 많았습니다. 그땐 좋았던 기억보다 힘들었던 일이 더 많았어요. 조교사가 때론 관리사가 돼야 하고 때론 기수도 해야하는 그런 힘든 시절이었지요”
연중 경마시행을 바라보는 지금과 달리 그땐 12월 말부터 봄이되는 3월까지 3개월간의 긴 휴장이 있었다. 경주엘 나가야 상금을 벌고 그래야 생활이 가능한데 휴장만 되면 관리사도 기수도 없는 텅 빈 마방에서 혼자 경주마 목욕시키랴 훈련시키랴, 아프면 밤새 돌보랴 1인 4역을 맡아 분주했다고….
40두의 경주마가 마방을 꽉 채운 지금은 기수와 관리사를 포함해 10여명의 인력이 함께 할 수 있어 그나마 몸은 덜 고달프지만 나날이 변화하는 경마 기류에 자연스럽게 보조를 맞추려다보니 마음 편할 날이 없다.
“그래도 조교사 하면서 명마가 끊겼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예전의 ‘차돌’이니 ‘두발로’니 또 그전에 ‘충광’, ‘삼천리’, ‘신석도’등은 지금의 ‘새강자’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명마중의 명마였지요”
명장 밑에 약졸 없다고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은 경주마 관리에도 빛을 발했다. 지금의 ‘새강자’가 그냥 만들어졌을 리 만무라는 것을 입증하는 예다.
“‘새강자’는 특이한 말이에요. 그렇게 영리하고 온순할 수가 없지요. 몸이 아프면 적당히 몸 풀어주는 정도로만 뛰고 또 몸이 좀 무겁다 싶으면 훈련 중 전력 질주하기도 하고… 또 한창 나이의 경주마는 식사량이 많기 마련인데 ‘새강자’는 안그래요. 딱 먹을 만큼만 먹지요. 모든 신경이 경주력에만 쏠려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성질 내는 것도 본 적이 없지요. 그동안 숱한 경주마를 만나고 또 떠나 보내기도 했지만 ‘새강자’같은 말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경마팬, 아니 ‘새강자’의 질주를 지켜봤다면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출발이 다소 늦어 뒤에서 두 번째로 따라붙었던 ‘새강자’가 성큼성큼 외곽으로 감아돌아 마침내 ‘신세대’마저 잡아 버리고는 그랑프리까지 집어 삼켰던 그 장면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새강자’같은 말을 관리해서 좋겠다는 주변의 부러움도 당연하겠지만 그 부러움 뒤에는 ‘지면 어쩌나’하는 부담이 가슴을 짓누르곤 하지요”
승자는 고독하다. 주변의 부러움도 시샘도 초연히 이겨내고 장인정신만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에게 영광은 당연한 보상이 아닐까?
박원선 조교사는 패기넘치는 리더쉽의 소유자다. 조교사협회를 30년간 맡아 운영했다는 것만 봐도 그의 카리스마를 짐작할 수 있을 터. “고집이 없으면 조직을 운영하기 어려워요. 물론 때론 타협과 이해심도 한 몫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확고한 생각을 밀어부치는 추진력이 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조교사라는 위치도 한 마방의 경영자이자 마주의 재산을 맡아주는 관리인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흔들리면 자연히 운영 방침도 흐려지기 마련이에요”
60을 갓 넘은 박원선 조교사는 이제 말만 돌본다. 의욕적으로 뛰어드는 후배 조교사들에게 자리를 넘기고 조교사 본업에만 온 신경을 집중시키는 것.
“‘새강자’ 덕에 무료한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며 껄껄 웃어 넘기는 그의 모습에 승자의 여유와 장인의 고집스러움이 함께 묻어난다.
“한 평생 말과 함께 했으니 남은 시간 동안에도 직접 말을 돌보고 싶다”는 박원선 조교사의 소망이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이희경 기자 pinklady@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