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공원 최고의 승부사“두번 실수는 없다!”

“이겨! 이겨! 나도 한 번 먹어보자!!”
제8회 마주협회장배가 열리던 날, 저마다 우승을 목표로 출전시켰던 조교사들은 관람대 지하의 대기실에서 자신의 말을 향해 목터져라 응원을 보냈다. 10년만에 기필코 경마대회를 정복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지만 사실상 우승을 기대키 어려웠던 ‘비산’을 내보내고 장두천 조교사는 조용히 경주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결승선을 얼마 안남기고 자신의 ‘비산’이 하나둘 상대를 제치며 올라오자, 자꾸만 손에 힘에 들어갔고 어느새 목놓아 우승을 외치는 자신을 본다.
마침내 결승선… 줄곧 선두를 지켰던 ‘스트라이크테러’와 하위권에서 추격을 시도했던 ‘비산’이 동착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엇비슷하게 골인하자, 마음의 평정은 사라지고 이내 우승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겼다는데….
사진판정 후 우승마가 가려지기 까지의 10분이 마치 10년처럼 느껴졌다는 장두천 조교사를 만나 경마대회 우승의 기쁨을 함께했다.

‘비산’에 대한 장두천 조교사의 애정은 남다르다. 경마대회 우승을 차지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접 뉴질랜드에서 골라왔기 때문이다. 남들 눈에는 시원찮게 보였던 그가 왜 장두천 조교사에게 만큼은 늠름하게 보였을지… 더욱이 그가 우연찮게 자신의 조로 배정받은 것을 보며 ‘이런 게 인연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단다.
지난 87년 면허를 발급받고 조교사 생활을 시작한 장두천 조교사는 근 10년간 경마대회와 인연이 닿질 않았다. 개인마주제로 전환하며 경주마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한두해 만에 극복되지 않았다. 번번이 경마대회 석권에의 욕심은 났지만 그때마다 분루를 삼켰던 장두천 조교사는 뜻밖에도 마주협회장배를 거머쥐며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섰다. 출전마 8두 중 인기순위 최하위, 전 예상지에 요주의마로 조차 거론되지 못했던 ‘비산’으로 말이다.
그 자신은 이런 영광을 예견했을까?
“매번 대회에 내보내며 한 번쯤 우승에의 기쁨을 생각 안해보는 조교사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저 자신도 우승을 기대하진 못했죠”
사실 ‘비산’의 이번 마주협회장배 석권은 치밀한 작전의 승리였다. 전력상 여타 마필들과 겨뤘을 때, 열세임을 감안한 장두천 조교사는 초반부터 강력한 작전구사를 펼치기 보다 순위권을 목표로 한두한두 제치는 추입작전을 염두에 뒀던 것.
“출전마가 8마리니 처음에는 6위쯤에 따라붙어 레이스를 전개하도록 기수에게 지시했어요. 그리고 결승선 접어들며 지치는 말이 있으면 적어도 한두 쯤은 제껴 주길 바랬죠. 그러면 최소한 순위권은 되지 않을까… 그러다 운좋게 두세 마리 더 제칠 수 있다면 2∼3위권도 바라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랬다. 평소 ‘비산’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임대규 기수는 이날도 장두천 조교사의 작전대로 정확히 6위에 자리잡아 4코너까지 레이스를 풀어나갔고 이후 추진을 해보니 뒷심이 워낙 좋은 말이라 탄력이 붙는 느낌을 받았다고. 초반부터 난타전을 벌였던 우승후보들이 의외로 결승선상에서 무너지자 임대규 기수와 ‘비산’은 탄력을 살려 대추격전을 펼쳤다.
그리고 마침내 우승이 유력해 보였던 ‘스트라이크테러’마저 코차이로 따돌리며 감격의 마주협회장배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비산’은 물론, 욕심을 버리고 최상의 레이스 전개 만을 생각했던 조교사도, 또 조교사의 지시대로 한 치 오차없이 작전을 수행한 기수도 모두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13년간의 조교사 생활동안 장두천 조교사는 이번까지 포함해 총 5차례 경마대회를 석권했다. 흥미로운 점은 데뷔하던 해에 페케남컵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이후 마사회장배, 뚝섬배, 무궁화배, 그리고 마주협회장배까지 모두 다른 대회였다는 것이다. 은퇴전까지 모든 경마대회를 한 번씩 제패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던 터라, 장두천 조교사의 기쁨은 더욱 컸을 지 모른다.
장두천 조교사는 제주 사나이다. 바람 많고 돌 많은 제주에서 조랑말을 이끌고 뚝섬경마장을 찾아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3년이 지난 일이다.
“나중에 은퇴하고 나면 고향에 내려가 목장 일을 해보고 싶어요. 30년 넘게 해오던 일이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그래요?”(웃음)
경마공원 최고의 조련사, 아니 이젠 최고의 승부사라 불러도 좋을 듯 싶다. 마주협회장배라는 무대에서 드라마틱한 대역전극을 연출해낸 그가 다음번엔 어떤 깜짝쇼를 내놓을 지 기대해보자.
【이희경 기자 pinklady@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