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으로 숨죽이고만 있었던 꿈들이 마침내 실현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럽습니다” 15년 남짓한 조교사 생활 동안 처음으로 경마대회의 정상에 우뚝선 김양선 조교사는 우승에의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은 꿈을 가졌기에 살아갈 수 있고 모두 드러내지는 못해도 언젠가는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행복해진다는 말에서 그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새천년 들어 끝없는 비상을 준비하고 있는 김양선 조교사를 만나 그가 담고 있는 꿈과 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오랜 세월 동안 경마대회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던 김양선 조교사가 국산 3세마 ‘선봉대감’으로 제1회 코리안오크스를 거머쥐었다.
많은 인기를 모았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나 보이지도 않아 다들 큰 눈길을 주지 못했던 그의 ‘선봉대감’이었기에 김조교사의 감격은 훨씬 더 컸으리라 짐작해본다.
“지난해 경매에서 제법 많은 조교사가 탐냈던 말이에요. 암말인데도 생김새와 지세가 얼마나 늠름한지… 정말 많은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최고의 보답도 받았구요(웃음)”
‘선봉대감’이라는 이름이 다소 특이하지 않은가? 어쩐지 암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
“암말이지만 워낙 신체적 움직임이 기민하고 좋아요. 그러다보니 오히려 남성다운 이름을 붙여 파워를 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직접 짓게 됐지요. 마주께서도 흔쾌히 허락했구요”
말들의 실력은 이름을 따라가는 걸까….
모든 경마인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제1회 코리안오크스는 나름대로 의미가 큰 대회다. 우리나라에서도 3관경주가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를 가늠하는 시험무대며 이 대회 우승마는 유일무이하게 3관마 도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말에게 쏟는 정성에 비해 그 결실은 미약했던 김양선 조교사는 이제야 보답을 받은 것 같다며 마냥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양선 조교사는 사람을 좋아한다. 무슨 뜻이냐 하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며 좋은 사람과의 부대낌과 교감이 무엇보다 즐겁다는 의미다.
그래서 오히려 처음 낯선 사람을 대할 땐, 소극적이 되버리지만 일단 마음을 열고 진실을 느낄 수 있게 되면 ‘간도 쓸개도’ 다 줄줄 아는 인정미 가득한 사람이다.
“경마장에서 생활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갇혀 간다는 생각이 들게 되요. 그게 싫어 오히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함께하고, 그러는 거죠. 전 별로 가진 게 없어서인지, 친구가 가장 큰 재산이에요(웃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경마장 안의 사람들은 외부인이 접근하면 일단 경계의 끈을 늦추지 못한다. 자칫 오해라도 불러일으키게 된다면 자신에게 치명타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 이 일이 천직이에요. 경마장 들어오고 힘든 순간은 많았지만 그래도 늘 행복했죠. 소신과 의지가 있으면 사소한 유속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요”
기수양성소 제1기 출신인 김양선 조교사는 기수로서도 제법 이름을 날리며 2년차 때 벌써 경마대회를 제패한 경험이 있다. 연중 단 두차례 밖에 없었던 경마대회는 그 당시 모든 조교사와 기수, 온 마방 식구들 그리고 경마팬의 축제의 장이었다. 거기서 우승하는 기수는 당연히 주인공으로 떠올랐고 대동소이한 능력을 감안할 때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던 게 경마대회 우승이었던 것.
“무얼 해야 좋을 지 몰랐던 그 시절에 기수가 되면서 비로소 적성에 꼭 맞는 일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면 열심일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자연히 결실도 맺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별로 알려지진 않았어도 김양선 조교사의 말사랑은 극진하다. 어쩌다 마방식구들이 말들을 때리기라도 하면 불호령을 떨어뜨리는 그.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경주마 역시 한 식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살박이 어린아이같은 지능을 가졌지만 말들도 사람의 손길을 느낄 수 있어요. 자신을 아껴주고 만져주면 그대로 감정을 드러내요”
김양선 조교사는 감정을 숨기고 뭔가 속내를 가진 것이 싫단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진솔하게 자신을 그대로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 좋은 것도 그때문이리라….
매사가 긍정적이고 밝은 김양선 조교사는 관심사도 다양하다. 검도, 독서, 춤, 노래… 다양한 분야에 관심도 많고 재주도 특출한 그는 요즘 영어 공부가 한창이다.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었지만 언제나 새롭게 시작할 줄 아는 도전정신을 지녔기에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사람은 항상 배우고 노력할 줄 알아야 해요. 뭔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건 없어요”
항상 다가오는 어려운 고비들을 현명하고 긍정적으로 극복한 김양선 조교사. 이제는 노력의 결실들을 수확하는 것만 남았다. 물론 살아있는 동안 앞으로도 힘든 나날은 얼마든지 오겠지만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그의 용기가 믿음직스럽다.
‘건강한 신체에서 건전한 생각이 나온다’는 말처럼 몸도 마음도 건강한 그가 다시 한 번 시상대에서 활짝 웃는 모습을 기대하는 건 즐거운 상상이 될 것이다.
【이희경 기자 pinklady@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