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승까지 꼬박 10년 걸렸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굴곡도 많았던 김형수 기수(33세)가 마침내 고지에 올라, 멋적은 웃음을 짓고 있다. “좀 늦은 감이 있죠?”라며….
우승의 순간은 언제나 기쁘다는데 김형수 기수는 유독 추입마로 이겼을 때라야 진짜 이긴 것 같다며 이날의 1백번째 우승은 자신이 한 것 같지 않단다.
순탄치 못한 기수생활을 보내며 어느덧 ‘경마장의 이단아’라 불리게 된 그의 숨은 모습을 엿보자.

4개월째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해 99에서 멈춰있던 김형수 기수의 승수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부진했던 모습을 일순간에 씻기 위해 마음이 급했던 걸까? 하루에 2승을 몰아쳐 버렸으니 말이다.
“10년이나 됐는데, 뭐 1백승이라고 특별할 게 있겠습니까”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처럼 소감도 덤덤하다.
김형수 기수는 말이 별로 없고 내성적인 편이다. 대신 술을 좋아해 기수들 사이에선 ‘애주(愛酒)가’로 불리기 까지 한다고.
“술을 참 좋아해요. 그 때문에 젊은 시절엔 고생도 많았을뿐더러 기수로선 많은 기회를 놓치기도 했지요”
소주 2병은 거뜬이 마실 수 있다는 그는 자제력이 없었던 지난날에 대해 아쉬움이 많다고 토로한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그는 많이 달라졌다는 소리를 듣는다.
13조에서 성실히 훈련과 기승을 병행하며 이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한 느낌이다.
“어딜 가나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13조는 조교사님이 편하게 대해줘요. 혼자서 훈련을 맡아 할 때는 체력적으로 어려움도 많이 느꼈지만 오명섭 기수가 복귀한 후부터는 함께 할 수 있어 더욱 편해졌지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원하는 만큼 말에게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게 좋습니다. 또 요즘엔 좋은 신마들도 많이 들어왔구요”
김형수 기수는 자신이 기수가 될 수 있었던 데 감사한다. “이곳과 인연이 많았나봐요. 지금도 내가 기수가 될 수 있었던 계기를 생각하면 이게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물을 갓 넘기고 취직된 직장에 첫 출근하기 전날, 잠이 안왔단다. 그래서 밖을 서성이다 오래된 신문 한 부가 그의 눈에 띄었고, 자세히 읽어보니 ‘서울경마장 10기 기수 탄생’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그때 처음으로 세상에 기수라는 직업도 있다는 걸 알게된 그는 자석에 끌리듯 직장도 내버려두고 경마장 문을 두드리게됐다. 무려 5년이나 지난 그때 그 신문이 김형수 기수의 눈에 띈 건 정말 운명같은 거 아니었을까?
정규 15기 기수로 입사한 김형수 기수는 데뷔 후 4년만에 수습기수 신분으로 한국마사회장배에 ‘대왕’을 타고 출전, 겁없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짜릿한 순간이다.
김형수 기수는 추입마를 좋아한다. 다른 기수들도 여럿 추입마를 선호하긴 하지만 그의 추입마 사랑은 다소 유별난 편.
“선행마 타고 수월하게 1등하면 이긴 것 같지가 않아요. 그거 말이 혼자 다 뛴 거지 내가 뭘 한게 있나…하는 뭐 그런 생각 때문에요. 대신 추입마는 달라요. 뛰쳐 나가려는 말을 달래서 잘 참다가 4코너 돌아 하나둘 제치는 그 맛은 기수가 아니면 느끼지 못할 겁니다”
그가 기억하는 ‘삼가’와 ‘작은섬’은 추입이 일품이었던 그의 애마들이다. 400kg대에 불과한 작은 체구지만 악발이 근성이 있어 절대 지지않으려는 승부욕과 어디서 솟아나는 지 모를 추입력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김형수 기수에게는 특이한 징크스가 하나 있다. 경마날 샤워를 하지 않고 대기실로 내려가면 이상하게 불안하고 경주가 꼬인다는 게 바로 그것. 징크스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더욱이 씻어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징크스라면 더 환영할만 하지 않은가?
최근 그는 1백승을 앞두고 많은 부담을 안았다. 예시장에서 응원하는 팬들도 여기저기서 “백승!백승!” 응원하는 통에 어지간히 부담스러웠을 법하다.
“저 개인적으로는 크게 의식하지 않았지만 응원해주시는 팬들 때문이라도 하루빨리 승수를 올렸으면 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최근 경주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설상가상으로 1월과 2월에는 부상까지 겹쳐 더 조바심났던 게 사실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스트레스가 쌓이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자연이 말타기가 싫어지지 않을까?
“사실이에요. 스트레스는 슬럼프를 초래하게 되고 슬럼프가 장기화되면 그땐 말 타기가 아주 싫어지죠” 자신이 슬럼프다 싶으면 그는 오히려 마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말에게 정성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 그동안 놓쳤던 숱한 기회를 이제 다시는 맥없이 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모습에서 2백승, 아니 5백승도 꿈꿀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이희경 기자 pinklady@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