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의 터줏대감 배휴준(36세) 기수가 드디어 대망의 5백승 고지에 올랐다.
이제나저제나 그의 5백승을 기다려온 막강 팬클럽 「휴준군단」을 비롯해 그를 아끼고 지켜본 경마팬들도 진심으로 축하의 마음을 보냈다.
올 해로 기수생활 20년째에 접어든 그가 5백승을 일궈내던 날 모처럼 함박웃음이 그의 입가에 맺혔다. 얼마나 기쁠지 상상해 보자.

“선배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존경스러워요∼”
장난스럽게 축하의 말을 건네는 후배기수들의 모습이 정겹다. 무려 17∼8년이나 아래인 까마득한 후배들이지만 늘 곁에서 진심어린 충고를 서슴치 않는 그이기에 인심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다들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축하의 말씀을 건네지만 스스로는 조금 쑥스워요. 어린 나이에 경마장에 들어와 제법 오랜 기간 동안 말을 탔었거든요. 그런데 이제야 남들도 다 하는 5백승을 달성했네요(웃음)”
남들도 다 하다니… 천만의 말씀이다. 현역으로는 박태종·안병기·이성일 기수에 이어 네 번째이니 말이다.
배휴준 기수가 경마장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그가 열여섯살 때인 지난 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뷔하던 해에 그는 무려 38승이나 걷어올리는 등 신인 무렵부터 한창 주가를 날렸다. 하지만 뚝섬시절이었던 당시는 기수에게 별반 스포트라이트가 미치지 못했고 그는 자신의 활약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 당시가 제일 아쉬워요. 좀 더 성실한 자세로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을텐데 저는 그렇질 못했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대충대충하는 편이었지요. 그래서 5백승 달성이 이렇게나 어려웠는지도 모릅니다”
498승을 이룰 무렵부터 그는 작은 슬럼프에 빠졌었다. 제법 인기있다는 경주마에 타고도 우승은커녕, 순위권에 조차 들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
“주변에서 워낙 성원이 컸기 때문인지 부담스러웠어요. 의식하지 않으려 하면할수록 제게는 점점 큰 짐으로 다가왔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활궁’을 제외하고는 실수했던 부분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활궁’의 경우 상태도 무척 좋았고 레이스 운영만 좀 더 잘 했더라면 상대마인 ‘파이널프라미스’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거든요”
사실 그가 490승 대에 접어들면서 많은 경마팬들과 선·후배 기수들은 카운트다운에 돌입, 언제쯤 그가 축포를 터뜨릴 수 있을 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많은 언론이 그를 취재하기에 바빴고 그럴때면 왠지 부담스러워 자리를 피하곤 했던 그였다.
한주한주 승수쌓기가 쉽지 않자 그는 마음을 비웠다. 하지만 왠지 소속조의 ‘무비동자’와 52조 ‘다함께’의 출전을 앞두고는 왠지 마음이 설랬다고. 사람 일은 모른다고 소속조의 ‘대마루’가 뜻밖의 선전을 펼쳐 499승째를 기록한 다음날 그는 기대했던 ‘무비동자’에 부담없이 기승했으나 결과는 2위입상이었다.
“사실 ‘자당’을 이기기란 어려울 것으로 짐작 했었지만, 세 번을 내리 패하다보니 왠지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일요일 11경주에서 마침내 기대주 ‘다함께’로 고대해온 5백승을 일궈냈다.
“말의 능력 만큼은 믿었어요. 하지만 3개월간의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경주력이 무뎌지지 않았을까 걱정도 됐었지요”
지난해 하반기 그는 경주중 낙마로 뇌진탕을 일으켜 입원한 이후 재기전에 나서 괴력을 발휘한 적이 있었다. 인기마 부진마 가리지 않고 타는 말마다 족족 우승과 입상을 터트려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었는데 당시 기자는 그와의 인터뷰에서 5백승에의 바램을 물은 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 “열심히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5백승이지, 욕심내지는 않는다”고 밝힌 바 있는데 막상 5백승을 하고 난 후의 심정은 어떤가 궁금해진다.
“저도 사람인데 왜 의식을 안했고 긴장되지 않았겠어요?(웃음) 이렇게 해내고 보니 무척 기뻐요” 그 근엄해 보이는 얼굴에 비로소 웃음기가 감돈다. 기쁘긴 무척 기쁜 모양이다. 지난해 11월 고 김광호 조교사의 빈소에서 만났던 그의 모습이 문득 겹쳐진다. 한없이 슬픈 얼굴로 문상객들을 맞던 그였다. “아픈 몸으로 최선을 다 해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그분을 존경했습니다. 좋은 일만 맞다가 좀 더 세상과 함께 사시길 바랬기 때문에 마음이 더 아팠는지 모르겠어요”
20년째 기수생활을 하면서 그가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다. 진실이 왜곡되고 자신의 뜻이 굴절되는 생활들에 지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거치다보면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다”는 게 그가 후배들에게 귀띔하는 처세술이다.
현역 기수 가운데는 최고참급에 속하지만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하다보니 우리나이로 이제 서른 여섯에 불과한 배휴준 기수. 앞으로 그의 넉넉한 활약을 좀 더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희경 기자 pinklady@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