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이 부는 여성 파워Ⅲ- 국내 유일의 경주마 도핑검사소에서 약물검사 담당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해 지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임이 분명하다. 여성들에게 터부시돼 왔던 경마에서도 이런 추세는 여지없이 반영되고 있다. 여성 기수의 등장, 여성 경마팬의 두드러진 증가 등 경마장을 드나드는 여성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경마시행의 최일선에서 묵묵히 전념하는 여성들을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번호에서는 최근 세인들의 관심을 부쩍 끌고 있는 도핑검사소를 찾았다. 국내 유일의 경주마 도핑검사소이기도한 한국마사회 도핑검사소에는 총 2명의 여성이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은주씨는 지난 96년 입사해 4년차를 맞이한 중견 연구원이다.
<편집자주>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인데 인터뷰라니요…”
처음 기자를 만난 그는 겸손한 미소 뒤에 쑥스러움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의 말을 빌자면 자신은 ‘대인기피증으로 생각될 만큼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란다. 그러나 ‘원만하고 수더분한 편’이라는 주위 평가를 들어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이씨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지난 96년 공채로 마사회 보건소에 입사했다. ‘여직원 많은 곳이 환경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했던 이씨지만 막상 이곳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오히려 다른 직장보다 여직원의 수는 훨씬 적더라고.
“밖에서 저를 보는 시선은 어떨지 모르지만 스스로는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집에 들어가면 다음날 출근할 때까지는 다시 신발을 신지 않거든요(웃음)”
이런 성격 탓인지 아직도 마사회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직원들을 잘 알지 못한단다. 물론 모든 직원들을 다 알기엔 근무하는 직원수도 많고 또 넓은 게 사실이니까 별로 이상할 건 없겠지만….
“저도 처음엔 만나는 분들 모두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꼭 기억해 두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어느날인가 40대 중년 신사를 본관 앞에서 만나 꾸뻑 인사드렸더니 ‘나를 아느냐?’고 오히려 반문하지 않겠어요. 알고보니 문화관광부에서 나온 사무관이었던 모양이에요. 왠지 쑥스럽기도 하고 부끄러워서…” 그때부터 그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더 이상 인사를 건네지 않았단다.
이렇듯 어렵게만 느껴지는 대인관계 만큼이나 그에게 자신없는 일은 또있다.
아기 돌보기가 바로 그것. 지난 97년 같은 직장의 동료와 결혼에 성공한 그에게는 16개월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갓난쟁이(?)가 있다.
“우는 아이 어르고 달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몰라요. 특히 떼쓰는 아이에게 화 안내기는 정말 어려워요”
하지만 세상에는 어려운 일 투성이라고 입을 쏙 내미는 그일지라도 일 하나만큼은 똑 부러지게 해낼 줄 안다.
그가 하는 일은 도핑검사소에서 시행하는 경주후 뇨채취 및 혈액 검사. 얼마전까지만 해도 마사회보건소 내의 이화학검사팀으로 분류됐던 도핑검사소는 그 중요성이 부각되며 지난해 드디어 독립부서로 분리됐다.
보건소에서 출전할 경주마의 시료 채취를 담당한다면 도핑검사소는 채취한 시료를 검사하고 약물반응이 있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것.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도핑검사소로 보내지는 시료에는 일련 번호만 표기될 뿐 어떤 경주마에 관한 내용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무려 7백49종에 이르는 약물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작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경주 후 검사에서 이전까지 단 한 번도 확인하지 못했던 이상시료를 발견한 것이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검사에 검사를 거듭하던 그는 7백가지가 넘는 약물을 일일이 대조해 본 결과 이상없음을 확인했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국내 유일의 경주마 도핑검사소, 한국마사회는 지난해 경주마 도핑검사에 관한 국제인증을 받는데 성공했다. 이는 11명의 연구원들이 총력을 기울인 결과이며 경주마 약물검사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쾌거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현재 시료검사보다 대외 자료 수집에 더 열중하고 있다. 세계의 경마시행 31개국가가 모여 의견과 자료, 연구 결과 등을 교환하는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경주마의 약물검사부분은 아직까지 자료가 미약해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고 한다.
“경마팬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경마 시행은 경주마의 약물검사로 시작해 결국은 약물검사로 끝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 강조돼야 하고 이제 우리는 첫 발을 뗀데 불과한 거죠” 경주 시행의 공정성 여부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며 그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경주마의 약물검사라는 것을 그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긍정적인 시각보다 질타가 더 많은 시기’라 스스로 위축될 때가 많다지만 그는 분명 우리 경마 수준을 확 끌어올릴 숨은 일꾼임에 틀림없다.
【이희경 기자 pinklady@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