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의 기수하면 ‘김명국’이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오래된 경마팬들은 당나귀도 몰고 온다던 김명국의 전설같은 얘기를 털어 놓곤 한다.
형편없었던 경마장 풍경. 그 속에서 진주처럼 빛을 내던 사람. 기수 은퇴후 어느덧 조교사 5년차를 맞이했다. 한국 최고의 기수에서 이제는 최고의 조교사로 발돋움하고 있는 김명국 조교사의 거듭나기를 살짝 들여다 본다.

“운동은 못해요. 하지만 오기와 근성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요”
지고나면 잠이 안왔다는 김명국. 기수시절 34kg의 왜소한 체구로 경마장을 휘저었을 모습이 쉽사리 상상되지 않는다.
그의 고향은 무진장으로 유명한 전북 장수. 기수모집 공고가 공부하기 싫었던 그의 눈에 띈것은 그야말로 우연, 아니 필연이었을 듯 싶다. 마치 ‘키 작은 사람은 다 모여라’ 같았다니…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그는 생각보다 주위의 만류가 너무 심해 잠시 기수의 꿈을 접기로 했다. 졸업을 하고 난후 부랴부랴 상경, 정규 6기로 경마장에 첫 발을 내딛었다.
비록 시작은 미미할 지라도 그 끝은 성대하리라 했던가…
초라한 시작이었다. 군기가 잔뜩 들어간 양성소 분위기도 무서웠고 처음 해보는 단체 생활도 적성에 맞지 않는 듯 해 몰래 양성소를 탈출, 친지가 경영하던 천호동의 중국집에서 무작정 버텼다. 이름하여 양성소 탈출범 제1호. 며칠간 신나게 자장면 배달에 몰두하던 그를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당시 교관이었던 신우철 조교사였다.
마지못해 끌려오긴 했지만 이래선 안된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고 그때부턴 열심히 해보고자 노력했다고 김명국 조교사는 당시를 회고한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80년


3월, 한국 최고의 기수는 데뷔전을 가졌다.
아마도 경마팬들은 경마 적중이 참으로 어렵다고들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신인기수들이 첫 승을 해내기란 더욱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데뷔후 5년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던 김명국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첫 승도 4개월여만에 간신히 달성했고 동기들에 비해 한참 뒤지는 성적에 그쳐 위축될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러나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했다. 선배였던 양재철 기수(현 조교사)의 부상으로 뜻밖에도 ‘여의주’가 그의 품으로 온 것. ‘여의주’는 그의 소속조에서 가장 유망한 경주마였고 그 무렵 처음 시행된 특별경주에 우연찮게 출전하게 된 것이다. 조교사 조차 낙관하지 못했던 우승을 그가 당당히 거머쥐면서부터 그의 경마 인생은 용에 날개 단 듯 수월하게 풀렸다.
어느새 일류기수라는 칭호가 그를 따라다녔고 그는 각종 기록을 차례로 깨며 경마계의 기린아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지난 92년에 6백승 고지를 넘어섰고 그 해에는 마침내 백원기 기수가 가지고 있던 최다승 기록마저 경신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마 역사상 첫 영예기수라는 영광을 차지한 그에게 더 이상 마칠인삼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음을 입증했다.
“물론 경주마의 능력은 그 어떤 요소보다 중요해요. 하지만 엇비슷한 말들끼리의 접전일 때는 기수의 능력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지요”
그는 스스로를 타고난 기수라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지지않으려는 강인한 승부근성과 노력만이 빛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김명국 조교사의 경마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주저없이 처음 인연을 맺었던 고(故) 김정식 조교사(김충근 조교사의 부친)를 꼽는다. 신참내기였던 그에게 매서운 채찍질도 마다않던 그분이 지금도 두고두고 생각난다. “우승해도 살가운 칭찬 한마디 해주지 않던 분”이라고 말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그의 가슴에 각인시킨 장본인이었기 때문인지 감사의 뜻이 묻어난다.
그는 지난 95년 ‘군주’를 마지막으로 경주로를 떠났다. 물론 기수로서의 은퇴였을 뿐 그에게는 조교사로서 제2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덧 5년차를 맞이한 그. 기수시절의 화려한 명성은 서서히 경마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지만 도약 시기만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는 여전히 최고다. 최고의 기수라고 해서 반드시 최고의 조교사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영원한 경마인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지 모르겠다.
이제는 조교사가 된 김명국이 경마팬들에게 들려주는 새해 인사에 귀를 기울이자.
“경마팬 여러분 그동안 아끼고 성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많은 행운이 있으시길 바라며 올 해는 ‘포트오먼’으로 시상대에서 만나뵙겠습니다.(웃음)”
【이희경 기자 pinklady@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