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취임한 박진호조교사 협회장
-‘에이원’ 단짝 기수에서 조교사협회장까지

-기록이 없는 경마의 선사(先史)시대
박진호 조교사는 어려서부터 말타기를 좋아해 경마장에서 말을 타며 놀다가 그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높이 산 최일선 조교사의 권유로 기수가 됐다. 당시는 체중에 문제가 없다면 누구나 말을 탔던 시절. 조교사들이 개인적으로 기수를 발굴, 교육시키던 시절이었다. 66년 3월 기수가 된 그는 최초로 한국마사회로부터 기수 교육을 받는다. 말하자면 ‘기수 양성 제1세대’인 셈이다. 채찍도 보호장구도 없었고, 기수의 수가 26명으로 그는 하루에 14경주를 탄 적도 있다고 한다. 더욱이 지금의 경주가 국산마와 외산마 경주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당시는 더러브레드 경주마와 조랑말 경주가 있어, 그도 하루에 더러브레드 경주마와 조랑말을 모두 타 본 적이 있다니 지금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실감케 된다. 모두가 어려웠던 60년대. 경마가 제자리를 잡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마사회에 의한 단일마주제 시행 이전이라 한 사람이 마주를 하고 기수도 될 수 있었으며, 조교사이면서 관리사이기도 했다. 12월말에 한 시즌이 끝나 다음해 3월말 시즌이 개막돼 겨울철 보릿고개를 겪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하루매출이 잘해야 300만원 하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처럼 부정의혹이니 협박 등의 살벌한 단어는 찾기 힘들었던 정이 넘치는 인간적인 경마장이었다.

-시대의 명마 ‘에이원’
야구팬들의 뇌리속에 한 번도 본적 없는 전설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최고의 타자로 남아있듯이, 아직까지도 많은 경마팬들은 ‘에이원’을 최고의 명마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에이원’의 단짝 기수가 그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에이원’과 함께 데뷔전부터 마지막 경주까지 불패신화를 이어갔다. ‘에이원’은 선행이든 추입이든 기수의 작전전개에 충실히 따르는 정말 말(言) 잘 듣는 말(馬)이었다고 한다. ‘에이원’은 그 최후도 남달랐다. 다음 경주 출전을 위해 대기하던 중 갑자기 앓기 시작하더니 이틀만에 죽어버린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어 해부를 해보니 장이 모두 헐어 있었다고 한다. 명마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채 만개(滿開)하기도 전에 떠나버린 단짝 ‘에이원’과의 갑작스런 이별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아직까지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누가 뭐래도 말타는게 최고다”
혼자서 기수, 조교사, 관리사 세 사람 몫의 일을 해오던 그는 78년 고생(?)스러웠던 기수 생활을 접고 조교사로 데뷔한다. 무엇보다 먹고 싶은 것을 맘껏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조교사가 되고 느낀 최고의 행복이었다. 기수시절엔 가족과 같이 마음 편히 식사하기도 어려웠고, 가족들도 그 앞에서는 밥 먹는데 주저했을 정도로 체중조절은 기수시절 내내 그를 괴롭히던 아킬레스건이었다. 하지만 건강이 허락된다면 말타는 것이 최고라며 조교사 생활보다는 기수시절이 더 재미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키가 많이 자라 기수가 될 수 없지만, 중학교 때까지 키가 작았던 차남에게 기수를 시키고 싶어했을 정도로 말에 대한 그의 사랑과 예찬은 각별하다.
그는 얼마전 실시된 조교사협회 경선에서 회장으로 선출돼 회장직을 연임하게 됐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여러 사람에게 떠밀리다시피 회장이 됐고, 조교사협회가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는 단체라 어려운 점이 많지만, 일단 회장에 선출된 이상 한국경마의 발전과 유관단체간 협조를 위해 열심히 뛸 각오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남은 조교사 생활 무사히 마치고 여건이 된다면 목장을 운영하면서 경주마를 생산해내는 게 남은 소망이라고 한다.


〈박진호 조교사 일문일답〉
-조교사협회장에 연임됐는데 각오는?
경주마 수급이 원활치 않아 어려움이 많지만, 경마의 질을 높여 팬들의 의혹을 푸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또한 경마 단체들간의 화합에도 신경 쓰겠다.

-경마발전을 위해 개선돼야할 점이 있다면?
출전마 두수가 늘어나고 상금이 인상돼야 한다. 외국처럼 한 경주에서 20마리의 말들이 레이스를 펼쳐 우승을 예측하기 힘든 경주가 많아야 한다. 우승을 예측할 수 없는 박진감 넘치는 승부가 펼쳐진다면 부정 의혹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조교사나 기수도 팬들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수 대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바라는 점은?
기수에게는 배우려는 자세보다는 스스로 터득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조교사가 가르쳐주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말에 대한 느낌이나 감각은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노력이 중요하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뒤쳐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부정에 빠질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마팬들에게 한마디?
모든 조교사와 기수가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팬들의 비난에 항상 죄송한 마음이지만, 경마가 워낙 변수가 많고 복잡해 솔직히 그러한 비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경마는 투기가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경마를 하면 욕심만 커질 뿐 소득이 없다. 하루에도 억대부자가 몇 명씩 무너지는 것이 경마다. 경마를 즐겨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권현 기자 knhn@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