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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간 곳은 이시돌 목장이었다. 이시돌 목장이 첫 번째 행선지가 된 것은 지난해 은퇴식을 치르고 씨수말이 되기 위해 이시돌목장으로 간 ‘당대불패’를 보기 위함이다. 그곳에서 건강한 모습의 ‘당대불패’를 볼 수 있었다. 경주마 때 못지않게 힘이 넘치고 관리가 잘 된 듯 체격도 경주마 때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니 잘 지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쉬운 것이라면 건강하고 힘이 넘치는 ‘당대불패’가 생식기능의 문제로 인해 자손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사실에 모든 사람이 아쉬워했지만 누구보다도 아쉽고 안타까웠을 사람은 정영식 마주였을 것이다.
그래도 ‘당대불패’는 행복한 경주마다. 비록 씨수말로 후대를 남길 수 없게 됐지만, 정영식 마주의 변함없는 관심과 이시돌 목장의 귀한 몸인 씨수말 ‘엑톤파크’ 못지않은 세심한 관리를 받으며 혼자만의 초지까지 제공받는 등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어떤 은퇴마들보다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민간목장에서 최고의 교배료를 받는 ‘엑톤파크’의 위풍당당한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수많은 씨암말들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귀여운 망아지들을 보며 경주마목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좋은 기분도 느낀 시간이었다.
두 번째로 간 곳은 녹원목장이다. 이곳에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도입해 이번 시즌부터 교배활동에 투입되는 씨수말들이 있었다. 북미에서 최고의 씨수말로 인기를 끌고 있는 Tapit의 자마인 ‘테스타마타’가 얼마 전 녹원목장에 도착해 교배활동을 준비 중이었고 ‘유로실버’(부 Unbridled`s Song)와 ‘스피큘’(부 Sunday Silence)도 볼 수 있었다. 마침 목장에 계셨던 녹원목장의 지대섭 회장은 세 두의 씨수말을 자랑스럽게 소개를 하며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혈통의 다양화라는 측면을 강조한 녹원목장의 씨수말 도입방향은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녹원목장에서의 한 가지 아쉬움은 ‘제이에스홀드’를 보지 못한 것이다. ‘제이에스홀드’는 분명 녹원목장 소유이기는하지만 너무 많은 씨수말을 관리할 수 없어 다른 목장으로 보내 관리 중이라고 했다.
세 번째 행선지인 금악목장은 녹원목장 바로 옆에 있다. 지금은 금악과 녹원으로 분리됐지만 예전엔 하나의 목장이었던 곳이다. 그래서 아직도 ‘인그란디어’같은 씨수말은 공동소유이기도 하다.
‘지금이순간’과 ‘운해’라는 자마의 활약으로 인기 씨수말이 된 ‘인그란디어’는 올해도 100여두에 가까운 교배횟수로 최상위권의 기회를 받는 씨수말이 될 것 같다. 교배료가 500만원이라는 ‘인그란디어’는 목장 측에 상당히 큰 금전적 이득을 안겨주는 기둥이 되었다.
금악목장에서 가장 보고 싶은 씨수말은 ‘지금이순간’이다. 국산마 출신 씨수말은 능력을 떠나 지금까지는 사실상 은퇴 후 거의 교배기회를 얻지 못하고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백광’, ‘제이에스홀드’, ‘개선장군’, ‘천년대로’ 등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수많은 경주마들이 씨수말이 된 후 교배기회의 절대부족으로 과연 씨수말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지금이순간’도 선배들과 같은 신세가 될까 우려가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목장에 도착해 관계자로부터 올해 20~30두정도의 교배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니 그 정도의 교배기회라면 다행인 수준을 넘어 국산마 출신 씨수말로는 최상급의 조건이라고 할수 있다. 이 정도의 기회가 꾸준히 몇 년간 주어진다면 씨수말로 성공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생각된다. 기분 좋은 일이다.
시간이 많이 남아 몇군데 목장을 더 돌아보고 싶었지만 비도 내리고 바람도 많이 불어 더 이상 목장을 다니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경매기간이고 목장마다 정신이 없을 시간이어서 약속을 잡는 것도 폐가될 수 있다는 생각에 첫날 일정은 거기까지였다.
일정의 둘째 날인 화요일에는 곧바로 제주육성목장 경매장으로 향했다. 전날과 다르게 화창한 날씨에 기온도 제법 높아 마치 초여름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경매장의 분위기는 잔치집 같다. 한쪽에 천막을 쳐놓고 국수와 고기 그리고 약간의 주류를 준비 해놓아 경매장에 모인 사람들이 아무 때고 간단하게 식사와 술을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런 분위기가 좋다.
이날 경매의 가장 큰 관심은 88번마였던 ‘제니튜더’ 자마(부 메니피)였다. 이번 경매뿐 아니라 이 2세마는 1세 때부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던 망아지였다. 다른 경매마보다 큰 키와 당당한 체격은 체격 좋은 말을 선호하는 우리경마의 분위기로 볼 때 인기를 모으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더구나 이 망아지의 아비는 우리나라 최고의 보증수표인 ‘메니피’ 아닌가.
경매가 시작되고 초반부터 유찰이 많았다. 생산자들의 기대심리가 높아져 예정가가 높았을 수도 있고 구매자들은 조금이라도 싸게 사기 위해 1차경매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 모든 사람들이 88번마 ‘제니튜더’자마를 사려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경주마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제니튜더’ 자마가 나오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하나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면 다른 부분에는 관심이 떨어지게 마련이고 그것이 유찰되는 2세마가 속출하는 것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제주에서 내려간 파워블로거 일행은 제주를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서 모두가 88번마의 경매를 볼 수 있기를 초조하게 기원했다. 다행이 초반 유찰이 많아지면서 경매진행이 빨라졌고 공항으로 이동하기 전 극적으로 88번마의 경매를 볼 수 있었다.
경매장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이 때 만큼은 모두가 경매장 안으로 들어와 관심 있게 지켜봤다. 많은 관심을 모았고 지난해부터 주목을 받았던 경주마라 경매가도 빠르게 올라갔다. 잠깐 사이에 2억 9천만 원까지 올라가며 지난해 세워진 최고가와 같은 금액에 도달했고 100만원이 더 추가되며 상징적인 의미인 최고가 기록 경신까지 이어졌다. 순간 장내는 앞으로 잘 달리기를 기원하면서 박수를 쳐주는 것으로 최고가 기록 세운 것을 모두가 축하해줬다.
이번 제주행을 함께한 팬들은 목장에서 보고 싶은 경주마, 씨수말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에 무척 행복해했다. 경마도 좋아하지만 말이란 동물을 더 좋아하는 팬들이라 그런지 말을 보는 것을 너무도 좋아했다. 더구나 평일에 진행되어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경매 참관까지하며 새롭고도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올 수 있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학교를 빠져가면서 간 이번 여행에서 경마와 경주마에 대한 이해와 사랑도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경마팬을 초청해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신 정영식 마주님과 서울마주협회에 지면을 통해 다시 감사함을 전한다.
작 성 자 : 권순옥 margo@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