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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교사에겐 1승 그리고 다음 1승이 중요할 뿐’
-기수에게 있어 통산 승수는 능력과 명예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다. 그래서 신인기수의 첫 승에 따뜻한 격려 박수를 보내고, 5백승이 넘는 기수에겐 영예기수라는 선물이 주어진다. 하지만 정작 경주마 우승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교사의 승수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4백승을 달성한 장두천 조교사. 그의 말처럼 알아주는 사람 많지 않은 서글픈 현실이지만, 그의 4백승 하나하나에는 청춘을 경마장에 바친 그의 땀방울이 서려있다.
-그 옛날, 미숫가루 먹고 뛰던 기수시절
제주도 함덕 출신인 그는 말을 키우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말과 친했다. 당시는 뚝섬경마장에서 제주산 조랑말 경주를 시행하던 시절. 지금 외산마 도입을 위해 해외로 검수단을 파견하는 것처럼 제주도로 검수단을 보내던 때였다. 김덕승 당시 마사회장과 박원선 조교사를 비롯한 검수단이 그의 목장으로 왔었다. 그리고 말을 모는 자그마한 체구의 그를 보고 검수단 일행이 그에게 기수를 제의했다. 결국 그는 조랑말들과 함께 입사(?)한 셈. 홍순철, 박진호, 김일성, 박원덕 조교사 등이 그의 기수 동기로 16명의 기수가 하루 15경주를 소화해야 했다. 휴식시간도 없이 한 경주 끝나면 후검량만 마치고 바로 다음 경주를 위해 나가야 했다. 경주가 있는 날이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미숫가루를 타 먹고 나가기가 일쑤. 기수도 모자라고 지금처럼 전산화도 이뤄지지 않아 한 경주 출마표에 자신의 이름이 동시에 오르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는 경주 직전에 어느 말을 탈지 결정해야 했다. 그는 당시 인기마보다는 악벽마를 선호했었다고 한다. 누가 타든 우승이 유력한 인기마보다는 개선의 여지가 있는 악벽마가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 그는 66년 3월에 데뷔해서 74년 4월까지 뚝섬에서 이렇게 사연 많은 기수생활을 했다.
-조교사 스트레스... 등산과 낚시로 푸는 생활 반복
기수생활을 접고 고향에서 목장일을 하던 그는 관리사로 다시 경마장을 찾는다. 당시는 일손이 모자라 관리사가 유도마에 기승하던 시절, 그도 81년부터 3년간 유도마를 타며 관리사 생활을 했다. 그리고 85년 7월 조교사로 데뷔한다. 오랜 목장 생활과 기수, 관리사 등 경마장에서 안 해본 일이 없었던 터라 사람 관리, 말 관리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던 그는 단일마주제 시절 꾸준한 성적을 올리며 조교사로도 상한가를 올렸다. 하지만 개인마주제로 전환된 이후에는 마주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마필이 부족해 작년을 제외하고는 만족스러운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어렵게 달성한 4백승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조교사로서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터뷰 중에 그의 말이 능력검사에서 불합격했다. 때마침 지나가던 기수를 불러 세워 좀 더 열심히 탔으면 합격은 하지 않았겠느냐며 나무란다. 그리고 기자에게 던지는 한 마디,
“능검도 이 정돈데, 실전에선 스트레스가 오죽하겠습니까!”
내 말(馬)이면 저도 스트레스를 덜 받겠는데, 마주 말, 팬들의 말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하다는 것. 더욱이 자신이 말을 타봐서 누구보다 기수를 잘 아는데, 기수가 자신의 의도대로 말을 타지 않아 패했을 때는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월요일 훈련이 끝나면 그는 무작정 차를 몰고 시외로 나간다. 드라이브로도 풀리지 않으면 아무 산에 오르기도 하고, 아무 강에 내려 낚시를 하며 밤을 센다. 이러한 생활이 매주 반복된다고 한다. 1년 동안 사회에서 영업도 해봤지만, 조교사 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도 없다는 게 그의 하소연. 하지만 정작 어렵게 달성한 4백승에 대해 주위에선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게 더욱 안타깝다. 기수는 첫 승부터 모두의 축하가 있고, 5백승이 넘으면 영예기수의 명예도 주어지는데, 정작 마방의 장(長)인 조교사에게는 포상은 고사하고 주위에서 챙겨주는 사람도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비산’ 퇴역, 아쉬움 많지만, 4백1승부터 다시 시작
44조의 기둥마 ‘비산’이 얼마 전 퇴역했다. ‘비산’은 그가 직접 뉴질랜드로 날아가 데려온 말. ‘다함께’, ‘포트오먼’ 등이 모두 현지에서 그의 간택(?)을 받은 말들이다. 당시 이들보다 관심을 덜 받았던 ‘비산’은 결국 작년 최하위 인기에도 불구, 마주협회장배에서 ‘새강자’의 연승을 저지하며 우승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그런 ‘비산’이 은퇴했으니, 마음 한 구석이 쓰릴 만도 한데... 그는 ‘비산’에 특별한 애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말인들 품을 떠나면 서운하지 않겠냐며, 남은 말들에게 어린 자식 키우듯 애정을 쏟겠다고 말한다. 부족한 자원으로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기는 다소 버거워 보이는 그에게 좋은 성적의 기본이 되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마주와 배우려는 열정을 지닌 후배 기수는 절실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4백승은 팬들의 성원에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또다시 4백1승부터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권현 기자 knhn@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