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승을 하는데 꼬박 1년 10개월 걸렸다.
98년 정규 18기로 경마장에 첫 발을 내디딘 박명진 기수는 동기들의 화려한 활약을 지켜보며 첫 승에의 꿈을 키워왔다.
쉽지 않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왠지 자꾸만 움츠러드는 자신을 보며 묵묵히 채찍질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지난주 토요일 마침내 이기는 법을 터득했다.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며 자신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고야 말았다는데… 꼬였던 매듭을 풀고 새출발을 다짐하는 그의 비상을 지켜보자.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뻐서… 그땐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언제쯤 1승을 올릴까 경마팬들 조차 예시장서 응원을 보내곤 했던 박명진(27세). 3전 4기로 어렵사리 기수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시작부터 엉켜버린 매듭처럼 자꾸 꼬이기만 하는게 아닌가…
데뷔전에서 부진마 ‘구암리’로 기대치도 못했던 2위입상을 일궈냈지만, 그게 다 였다.
한 달 두 달이 가고 동기들이 속속 첫 승을 기록하자 느긋한 성격의 그라도 조바심이 날 만했다.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훈련시키고 먹이도 줘 가며 정성껏 돌봤던 ‘헤븐캔웨잇’은 평소 성격이 칼칼해 접근조차 어렵지만 그래도 많은 애정을 쏟았던 말이다. 지난번 경주에서는 컨디션도 상당히 좋아보여 내심 ‘이번에야 말로’라며 우승을 기대했다.
그러나 우승을 기대하는 그의 조바심이 경주 중에도 그대로 드러났던 건지 자꾸만 서두르게 됐고 4코너 이후에는 맥없이 무너져버렸다. 아쉬움이 얼마나 컸던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단다.
박명진은 성격이 느긋하고 차분한 편이다. 매사 서두르는 일이 없고 혼자서 생각에 잠길 때가 많지만 요즘들어선 경주 중에 급한 모습이 자꾸 드러난다.
“성격과 경주 전개와는 별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무언가 절실히 바라는 게 생기면 평정심도 흐트러지고 자신도 모르게 서두르게 돼요. 이젠 바라는 걸 이뤘으니, 침착하게 경주를 풀어갈 수 있겠지요(웃음)”
153cm에 47kg인 박명진은 체격조건은 기수로서 더할 나위없이 좋지만 4코너 이후 체력저하를 곧잘 느껴 추진에 어려움이 따른다. 이번에도 비록 우승은 차지했지만 조교사 지시대로 선행에 나서지 못했던 점과 4코너 이후 제대로 추진해 보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원래 이 말(자력)로 우승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조교사님께서 선행에 나서 다른 말들 페이스에 말리지 말고 잘 타보라고 하셨는데, 예시장서 윤승할 때 컨디션이 무척 좋아 보여 작전대로 잘 해서 순위권 진입이라도 이루고 싶었어요. 욕심을 버렸기 때문에 더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마중단 위기로 어수선했던 지난주 토요일 마지막 경주. ‘자력’에 윤승해 예시장을 돌던 그를 향해 한 경마팬은 화이팅을 보냈다.
“언젠가는 한 번 터트릴거지? 너만 믿는다!”라며 목청껏 외치던 그 경마팬의 얼굴.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고 숨을 고르던 박명진의 얼굴에 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그 경마팬의 기대대로 우승을 했기 때문이다.
올 해 박명진의 목표는 바로 기승술 늘리기다. 동기들 가운데 벌써 문정균, 박을운 기수는 수습 딱지도 떼버리고 정식기수가 됐는가 하면, 다른 동기들 역시 화려한 플레이로 경마장을 주름잡고 있지만 자신은 이제 경주경험이 104전에 불과한 신참내기일 뿐이다.
체력적인 면도 한참 보강돼야겠지만 무엇보다 부족한 기승술을 보완하는 게 급선무이며 요즘은 대선배인 배휴준 기수로부터 기승술을 전수받는 것이 마냥 즐겁다.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그런 제가 안타까우셨던지 배휴준 선배가 직접 목각 기승기를 만들어와 연습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셨어요. 많은 도움이 되고 있지요”
아직까지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한 박명진이지만 주변에서 그를 돕는 손길은 많다. 늘 화이팅을 외쳐주며 첫 승을 자신보다 더 고대하는 동기들, 데뷔 때부터 많은 실망을 안겼지만 꾸준히 기회를 주는 강윤식 조교사, 그리고 예시장에서 비난보다 위로를 더 많이 보내주는 팬들…
첫 승을 계기로 많은 것들을 보게 됐다는 박명진은 이제야 시야가 좀 트인 모양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에 모든 신경을 쏟게 되면 정작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뭔지 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이제야 이런 거북스런 짐들을 털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주로를 누빌 수 있게 된 박명진, 그의 새출발을 충분히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이희경 기자 pinklady@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