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섭 기수

조용한 카리스마 김재섭 기수

실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인간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존경한다는 김재섭 기수. 자신도 그러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다. 한창 잘 나가는 동기(13기)들처럼 특출난 성적을 올린 것도 아니고, 개성이 강해 눈에 잘 띄는 것도 아니지만, 그에게는 조용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경주로에선 엄한 선배, 경주로 밖에선 맘씨 좋은 큰 형 같은 김재섭 기수. 그래서 그런지 그는 특히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다.

-잊을 수 없는 기억 ‘가속도’,‘포트오먼’
기수에게 있어서 명마를 탄다는 것은 큰 행운이자, 기승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김기수는 1990년 12월 16일 그랑프리 경마대회에서 ‘가속도’를 타고 우승한데 이어, 10년 후인 2000년 10월 1일 ‘포트오먼’과 함께 JRA트로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시대의 명마로 꼽히는 ‘가속도’와 명마의 계보를 잇고 있는 ‘포트오먼’. 그에게 이 두 말과의 만남은 행운이자 행복한 추억이다.
‘가속도’와의 인연은 90년 6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데뷔 3년차의 신출내기였고, ‘가속도’는 데뷔전이었다. 하지만 김기수는 워낙에 잘 뛰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을 믿고 부담 없이 경주를 전개했었다고 한다. 이 경주 우승으로 ‘가속도’는 데뷔 첫 승, 김기수는 수습 딱지를 뗐다. 이후 ‘가속도’는 그 해 12월 16일 그랑프리 우승 때까지 파죽의 7연승을 달리며, 명마의 대열에 들어선다.
그로부터 10년 후 ‘포트오먼’이라는 또 다른 명마를 만난다. 다만 ‘가속도’와는 다르게 ‘포트오먼’을 처음 탔을 때는 상당히 부담감이 컸다고 한다. 인기마였던데 반해 말의 상태를 잘 몰랐기 때문. 하지만 말에 대해서 점점 알게되고 경마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부담감도 점차 없어져 이제는 그가 타면서 ‘포트오먼’이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가 됐다.
그에게 ‘가속도’는 아직도 최고의 명마로 남아있다. 늘어나는 부담중량 때문에 조기 은퇴하여 씨암말 생활을 하고 있는 ‘가속도’. 그 자마들이 어미의 실력에 미치지 못하는 게 항상 안타깝다고.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있는 ‘포트오먼’에 대해서는 처음 탔을 때, ‘가속도’에게서 받았던 만큼 좋은 말이라는 느낌은 받지는 못했지만 점점 나아지는 말이라면서 아직 ‘가속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앞으로 핸디캡만 극복한다면 체격도 좋고 워낙에 힘이 좋은 말이라 명마가 될 수 있다며 기대를 나타냈다.

-“형제는 용감했다”
수습 시절, 굶기를 밥먹듯 하고 경주를 앞두고는 땀복을 입고 경주로를 대여섯 바뀌씩 뛰어야 할 정도로 체중조절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화려한 유니폼을 입고 말을 타고 싶다는 바램은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해 준 힘이었다. 지금은 꾸준한 소식과 운동으로 체중조절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그는 지난 1월 훈련시 낙마로 인해 허리를 다쳐 5주 동안 병원신세를 졌다. 99년에도 목을 심하게 다쳐 4개월간 입원한 바 있는 그는 다쳐서 몸이 아픈 것보다는 말을 탈 수 없고, 기승 리듬이 깨지는 게 부상으로 인한 손해라고 말한다.
부상을 당했을 때 가장 큰 힘이 돼 준 것은 역시 가족. 88년 만난 부인은 결혼생활 10년 동안 경마장을 두 세 번밖에 찾지 않았을 정도로 경마와는 거리가 멀었었다. 163cm로 키가 큰 부인은 그를 처음 봤을 때, 키가 작고 왜소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고, 기수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남편을 잘 이해해 줘 그에게는 아주 큰 힘이 되고 있다. 특히 98년 어렵게 얻은 4살박이 딸에 대한 김기수의 애정은 각별하다. 최근 들어 잦은 부상으로 고생이 심했던 그에게 가족이 주는 힘은 대단하다.
김기수의 동생은 ‘제주경마장의 박태종’이라 불리우며, 현역 제주 기수중 최다승을 올리고 있는 김용섭 기수다. 형의 기승 모습을 보고 기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김용섭 기수. 명절 때를 제외하고는 만날 수 없는 처지지만, 자주 전화 통화를 하며, 동생에게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더러브레드 경주마와 제주 조랑말 기승 방법에 큰 차이가 없어 해 줄 말이 많았다는 김기수는 이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더 이상의 조언이 필요 없게 성장한 동생이 한없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이제는 다시 시작할 때
잘할 때 칭찬 받고, 못할 때 욕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경마의 속성 상, 기수들에게 그런 일은 특히 자주 있고, 심하게 일어난다. 경주에서 성적이 나지 않았을 때 팬들도 실망이 크겠지만, 최선을 다하고도 기대대로 되지 않아 기수들은 더욱 실망이 크다. 하지만 그는 경마가 돈이 걸린 게임이기 때문에 기수에게 쏟아지는 팬들의 비난은 이해한다고 한다. 그래서 팬들을 의식하고 경주에서 졌을 때는 팬들에게 너무 미안해 항상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기수들은 말을 타지 않았을 때는 한없이 순한 사람들이지만, 일단 말을 타면 모두 냉철한 승부사로 변한다며, 팬들도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기수들을 믿고 기수들을 이해해 달라고 당부한다.
98년 조교사 면허를 획득한 그는 은퇴 후에도 경마장에 남아 좋은 말을 키우고 싶어한다. 지금은 기수, 조교사, 관리사 등 관련 인원이 너무 많아 인력 수급이 정체돼 있지만, 앞으로 제2경마장이 개장한다면 많이 나아질 거라며 낙관하고 있다.    
이제는 부상에서 완쾌돼 조금씩 운동을 시작하며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김재섭 기수. 예전에 비해 기승 기회가 많이 줄어 아쉽고, 기승 기회만 있다면 항상 자신이 있다며 200승을 꼭 이루고, 경마대회에서도 한 두 차례 더 시상대에 오르는 것이 남은 기수 생활의 목표라고 한다. 특히 ‘포트오먼’이라면 어떤 말을 상대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목표는 부상당하지 않고 건강하게 기수생활을 마감하는 것. 이제 다시 고삐를 죄고 힘차게 채찍을 휘두르는 김재섭 기수. 앞으로도 오랫동안 경마장에서 그의 따뜻한 미소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권현 기자 knhn@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