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사람잡는다’는 말(言)이 있다. 지금 경마장 풍경이 꼭 그 꼴이다. ‘설마설마’ 하다가 진짜 현실로 나타난 경마중단. 그 참혹한 경마장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비애감마져 든다. 본지 기자들의 취재에 의하면 경마시행을 총책임지고 있는 한국마사회와 경마중단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로 지목되고 있는 조교사협회노동조합은 다같이 경마를 중단시킬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결국 이번 경마중단 사태는 ‘설마 경마까지 중단시키며 우리의 요구를 안들어주랴’라는 집단이기주의와 ‘설마 경마까지 중단시키며 무리하게 요구를 하겠는가’라는 안이한 생각이 충돌하면서 빚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경마팬을 볼모로 서로의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위험한 발상이 현실로 나타나고 만 것이다. 결국 ‘설마’가 사람 잡고 말았다. 한국경마 78년 역사상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아닌 ‘최초의 인위적 경마중단’이라는 역사적 오명을 남기게 되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긴 하지만 조속히 사태를 수습하여 경마를 속개하게 된 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사실 경마중단 사태는 오래전부터 예견돼온 상황이긴 하다. 가깝게는 경마산업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은채 일반 공기업이나 정부 산하기관에 획일적으로 적용한 것을 그대로 한국마사회에 적용한 정부의 ‘IMF 구조조정’이 원인이 되었다. 정부는 돈한푼 출자하지않고 엄청난 이익을 발생시키고 있던 경마산업에 대해서 그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다른 분야에 적용하던 구조조정 방식을 획일적으로 적용시켰다. 이 과정에서 한국마사회임직원 3백여명이 거리로 내몰려야했고 20% 이상 경마상금을 삭감함으로써 마주, 조교사, 기수, 마필관리사들의 엄청난 희생을 요구했다. 게다가 사업이익률 6%를 지킬 것을 지시함으로써 예산편성의 자유를 말살시켰으며 ‘삭감이 최고의 미덕’인양 마구 예산을 삭감함으로써 경마발전을 위한 사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좀더 먼 곳에서 경마중단의 원인을 찾다보면 한국경마가 안고 있는 각종 경마시행제도의 후진성과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경마는 역사적으로 일본의 한반도 강점의 원할한 통치수단의 하나로 태동한 불행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해방이후에도 선진화의 길을 찾지 못한채 방황해왔다. 지난 93년 개인마주제라는 선진화한 제도를 탄생시켰지만 구호만 개인마주제일뿐 모든 제도와 틀은 시행체마주제의 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절름발이식 경마를 시행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신분전환이 이뤄진지 벌써 7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조교사나 기수, 마필관리사들이 한국마사회의 직원인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또한 제도전환 당시에 신분과 복지안정을 주요 골자로 하는 소위 ‘합의각서’가 협상타결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경마산업을 구성하는 각 단체의 짐이 되기도 하고 무기가 되기도 하고 있다. 사실 이 합의각서만 없었다면 경마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경마중단의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인 조교사협회노동조합과 경마시행의 총책임자인 한국마사회가 뒤늦게나마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더 이상의 피해없이 경마를 속개하기로 결정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만약 경마중단이 장기화되었더라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질 뻔했다. 많은 어려움을 겪고 경마가 속개된다. 경마가 속개되더라도 이번 인위적인 경마중단에 대한 책임 규명은 정확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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