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30일 일요일경마 마지막 경주인 제11경주에서 전산장애로 인한 발매사고에 대해 경마팬과 한국마사회가 대응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번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인식을 짚어보고 변화하는 경마패러다임에 대해 언급해보고자 한다.
이번 사고에 대한 경마팬과 경마시행체인 한국마사회의 입장은 팽팽하다. 경마팬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법적용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나름대로 이유 있는 항변이다. 한국마사회로서도 당시 경주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법적용의 상황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한편의 주장이 옳다라는 판단을 내리기에는 여러 가지로 고려해야할 사항이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경마팬과 시행체인 한국마사회의 갈등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경마의 역사성에 찾아보는 것이 이해를 돕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경마의 역사는 마주들의 오락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렇게 출발한 경마는 규칙에 의한 일종의 경기로 발전한다. 초창기 경마시행의 의미를 살펴보면 경마팬, 즉 마주가 아닌 일반 관중은 배제된다. 결국 경마시행규정은 경주를 진행시키기 위한 경기의 규칙(rule)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이는 현재 미국이나 유럽 등 각국의 경마시행규정을 보면 쉽게 납득이 간다.
이들 나라에서의 경마시행규정에는 경마팬이 경주에 간섭할 여지가 전혀 없다. 경주마 한 마리가 출전해 마권발매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그 경주마만 결승선을 통과함으로써 우승마로 확정하고 해당 마주에게 계획된 상금을 지급한다. 따라서 경마시행의 역사성에 입각한 본질적인 취지를 이해하는 맥락에서 살펴보면 1월30일 문제의 경주는 한국마사회가 경마시행규정에 적합하게 경주를 진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경마의 역사성과 경마팬의 의식이 현대에 와서는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경마는 우수마 능력검증이 아닌 경마팬의 베팅에 의한 이익창출을 중심으로 경마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경마팬은 팬이 없으면 경마가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경주의 성립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경마의 역사성에 견주어 고찰해보면 경마팬이 없어도 경마는 존재한다. 이 때의 경마는 마주들만의 오락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한국마사회의 경주진행은 법적으로 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다만 경마팬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현대 경마의 패러다임을 얼마나 적절하게 현실에 접목시키느냐가 중요하다.
한국마사회는 중앙전산처리장치(CPU)를 추가로 설치하고 소프트웨어를 재구성하는 등 재발방지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모든 경마팬을 대상으로 사은품을 증정함으로써 경마팬에 대한 서비스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출했다. 경마의 본질이나 법적용에 있어서는 한국마사회의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경마팬 중심으로 변화하는 경마패러다임을 적극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동안 감정이 격해 있던 경마팬들도 이제는 냉정한 자세를 되찾는 것이 중요할 것같다. 무엇이 우리의 경마를 발전시키는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한다. 그동안 경마팬들의 의식은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도 이러한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제 시행체와 경마팬이 모두 만족하는 공동의 발전방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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