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천 조교사, 나만이 홀로 간직한 추억‘킬리만자로’

지금 서울경마공원은 새벽이면 초겨울 날씨를 방불케 한다. 경주로를 둘러싼 가로수 나뭇잎들이 대부분 떨어지고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몇 개의 잎새를 보면 찬란하다고 자랑할 만한 지난날은 아니지만 나의 한창 때를 떠올리게 된다.
66년 기수로 데뷔한 나는 중간에 군복무와 제주도 목장생활 등 5년여의 외유를 제외하고 경마장 생활만 30여년을 지속해 왔다.
누구나 비슷하리라고 보지만 인생에서 청년시절만큼 아름답고 즐거웠던 시간은 없을 것이다. 23살의 꽃다운(?) 나이에 경마장과 인연을 가졌을 당시만 하더라도 16∼8명 정도의 기수가 전부였다. 전반적인 경마여건도 어려웠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당시 기수들은 경마일에는 말을 타고 평상시에는 말을 관리해야 하는 일인삼역을 해야만 했다.
이렇듯 많은 일들을 해야 했지만 상금은 턱없이 모자랐다. 당시 3일경마에 하루 15개 경주가 펼쳐졌기 때문에 성적이 좋은 날은 7∼8회의 입상을 할 수 있었지만 기수에게 돌아오는 상금은 한달에 요즘으로 치면 2백여만원에 불과했다. 물론 물가가 싼 시절이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그 당시 한 경주 우승상금이 1천 2백원이었으니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마사회장이 매출액 3천만원이 되면 자가용을 타고 다니겠다는 얘기를 했을 정도니 더이상 무슨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요즘에야 말들이 먹는 사료도 다양화되고 외국에서 수입도 해오지만, 그때는 한강변에서 풀을 직접 베다가 먹였다. 풀을 베러 나갈 때면 현재 무역센타가 있는 부근까지 풀베기를 나갔던 적도 있다.
대부분 풀베기를 할 수 있는 시간대가 비슷했기 때문에 한가한 때를 골라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짝을 맞춰 한강변을 훑고 다녔다. 어찌보면 참으로 고된 일이라고 생각되겠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말과함께 해야한다는 생각이 앞섰던 시기였다.
신인시절이라고 할 수 있는 67년. 조범용 조교사가 관리하던 3조에 소속된 나는 ‘킬리만자로’라는 마필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4∼5월쯤 도입된 ‘킬리만자로’는 처음 봤을 때 이렇다할 특징을 꼽을 것이 없는 그저 평범한 마필로 보였다.
그러나 경주에 나서면서 8전 8승의 무패기록을 이어가며 1등급까지 쾌속행진을 했다. 선입작전으로 대부분의 경주를 치르면서 한번의 패배를 기록하지 않은 ‘킬리만자로’였다.
그러나 ‘킬리만자로’와의 인연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9번째 경주를 앞두고 나는 조교사에게 말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출전을 하지 말자고 했지만, 의욕이 지나쳤던 조교사가 그대로 출전을 강행했고, 왼쪽 무릎에 부상을 입으면서 4위에 그치고 말았다. 바로‘킬리만자로’의 첫 패배이자 마지막 경주가 된 것이다.
그 경주 이후 ‘킬리만자로’는 무릎부상에서 재기하지 못하고 결국 은퇴를 하고 말았다.
일정한 숙소가 없었던 당시에 대다수의 기수와 관리사들은 마필들이 있는 마방 윗쪽에 판자로 2층을 만들고 그곳에서 생활했다.
유목민족인 몽골인들이 생활하는 풍습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하루 왼종일 말과 함께 생활을 하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이 관리하는 말과 그만큼 더욱 정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 사람의 지시를 너무나 잘 따랐고, 8전 8승이라는 뛰어난 기록을 세웠던 ‘킬리만자로’가 그렇게 무릎부상으로 경주로를 떠나게 됐을 때 나의 심정은 그야말로 가족을 잃은 슬픔을 느끼게 됐다.
지금 같으면 그랑프리나 경마대회에 나가 충분히 우승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킬리만자로’가 63kg까지 부담중량을 짊어지고도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부담중량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너무나 아쉬움이 남는 ‘킬리만자로’에 대한 추억은 현재 10조에서 활동중인 동일 마명의‘킬리만자로’를 볼 때마다 문득문득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기수시절 뚝섬경마장 주변에 심었던 포플러 나무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이든 조교사들중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이겠지만 은퇴를 해도 죽는 날까지 말과 함께 생활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내 나이 또래의 경마계 사람들은 경마를 업으로, 천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제는 모두가 잊은 나의 애마‘킬리만자로’.
그러나 나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다. 남은 조교사 생활동안 ‘킬리만자로’에 버금가는 좋은 말을 키워내고 싶은 것이 소망이라면 소망일 것이다.
【정리 : 권순옥 기자】

작 성 자 : 권순옥 violet@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