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하늘
                윤 한 로


말무덤께 들판에서 사람들 몇몇이 푸대 자루를 들고 허리를 굽혔다 폈다 움직인다 겨우내 굉이 고라니 한 마리 얼씬도 하지 않더니

저이들은 모여서 왜 왔다 갔다 하지요 뭐지요 감자 심그는겨 벌써 심나요 앗따 그래야 여름에 캐쥬 거기다 곧 배차 심는겨 다시 가을게 해 먹게스리 상구 그것도 몰류 그럼 왜 고추 고구마가 아니라 해필 감잔데 아 몰러 게까진 내사 어떻게 알우 시방 따진규

나는 또 여기 실바노 형제님께 혼나고 만다 밭두럭 불 연기가 가느다랗게 흘러간다 옛날 어머니 클러놓은 치마끈 같다 풀 대궁 까끄랭인지 사그랭인지 타는 냄새가 상큼하다 저거 심는다고 돈이 될래나 그러나 또 퉁을 들을까 봐 입을 꾹 다문다 나도 밭두럭 불 쬐며 감자 따위 심그고 싶다 봄하늘에 대고 형제님이 코를 팽 풀어제친다




시작 메모
여기 성당은 작은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된 지 얼마 안 됐다. 평일 미사 참례하는 분들이 한 예닐곱이 고작이다. 미사 복사는 나와 여든이 거의 다 된 실바노 형제님이 선다. 꼼꼼하면서도 무척 엄격하시다. 그래서 여기 동네 물정에 대해서는 주로 실바노 형제님께 배운다. 형제님은 몇 해 전 쓰러지시곤, 이제 몸이 안 좋아 농사는 세게 못 지으신다. 그러나 묵주기도는 여기 성당에서 가장 많이 바치신다. 한 주일에 삼사백 단을 바치시니까. 나는 끽해야 삼십 단이다. 아무튼 실바노 형제님한테는 기도가 바로 농사짓는 택이다. 봄이 오고 감자 심는 사람들 보면 얼마나 감자가 심고 싶으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