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윤 한 로

나는 재수를 해서
내 친구들은 나보다 한 살이 적다
그래도 나는 좋다
는 정정구가
오늘도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다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직수굿
복도 끝 비둘기
발가락을 보고 있는 갑다
종종종
새우젓 냄새를 피우며
바짝 다가올 것 같아
한쪽 팔을 바꿔 짚어도
먹물을 찍은 듯한 눈알
이젠 겁도 없어
날아갈 줄 모른다
바람 한 점 없는
교실 바깥 맑은 날씨 이런 날은
어딘가로 떠나가고파, 흘러가고파
흰구름 깔치 삼아


시작 메모
지각생들 중에는 성격 좋은 애들이 아주 많다. 온순하고 따뜻하고 꾸밈이 없고 인간적이다. 이해력과 상상력이 풍부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까지도 곧잘 한다. 느지막이 터덜터덜 걸으면서 사물을 이해하는 마음을 키우고 남을 용서하는 마음을 키우고 자기 자신을 최대한 낮출 줄 알게 된다. 걔네들은 한걸음 한걸음 소박한 시인이 되고 진정한 철학자가 되고 용기 있는 순교자가 된다. 그래서 그런지 지각대장들 얼굴은 아무래도 또래보다 좀 나이먹어 뵌다. 아무튼 지각이야말로 매력 있는 사건, 사태다. 가끔 대범하게 마을버스를 흘려보내고 도전할 만하다. 어디, 등산화 끈 바싹 졸라매고 내일 당장이라도 붙어보자꾸나.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