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목안
                    윤 한 로

깊은 골짜구니에 숨어들면서
죄다 쌍놈되얐다
뚜-욱 하니
항아리 굽고 담배 짓다가
두름으로 엮여 끌려갔다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매를 맞아도 전혀 아프지 않소‘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임군집이 같은 치명자들
애오라지 숯검댕이 입으로
예수 마리아만 묐다
굴뚝자리 사금파리에
햇빛 쨍쨍 빛날 때,
정든 밭둑머리 비탈
비스듬히 내리디딜 때,
식전 밥 해먹은 콩나물
허옇게 토했다
바짓가랭이 흙털고 일어나
줄레줄레 다시 걸었다
줄기차게 돌 틈 뚫는
또랑 물소리 올굵어지고
마침내 비좁던 길이
툭 터진다


시작(詩作) 메모
희광이 칼날에 사라진 치명자들 유해, 유품 중에 입고 있던 베옷쪼가리도 있는데 손바닥만한 그 유품을 대할 때면 새삼 눈시울 뜨거워져 머리 수그릴 밖에 없다. 왕관도 귀걸이도, 잘난 자손도 아닌 올굵은 쌍놈 베옷 한 쪼가리가 목숨을 바쳐 살고 간 이 세상에 남긴 전부이니 목이 미어진다. 병목안 수리산 성지에 들어갈 때 개울 물소리에서 언뜻언뜻 성인 유품의 굵은 올을 느낀다. 그래서 개고기, 옻닭 먹는 집들 틈바구니를 걸어 올라가며 그 물소리에 귀를 씻는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