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윤 한 로



‘오감도’ 이상이 ‘봄봄’ 김유정에게
우리 더 살면 뭐하냐며 같이 죽자
고 했다 삶의 실의와 병고와 절망에 빠져

그러나 유정은 나는 싫다 끝끝내 살아야쓰겄다
고 했다 그런 유정은 폐병이 도져
싸우고 싸우다 먼저 세상을 뜬다

가세는 진즉 흩어지고
피복 공장에 다니는 히스테리 누이한테 얹혀살면서
갖은 구박을 다 받아내던
미련 곰퉁이 톨스토이 같던 김유정이

개기던 골방은 퀴퀴한 쓰레기 냄새에 찌들고
재떨이와 신문지, 읽다 집어던진 책과 구긴 원고뭉치,  
개지 않은 이불, 피가래를 쏟던 요강 숨막힐 듯한데

아, 그것들이야말로 병마에 시달리던 우리 유정을
끝까지, 부득부득
살아보게 하려던 힘과 사랑이리

아아, 내려라 첫눈이여,
요절한 천재 작가의 퀭한 두 눈이여,
저 뜨거운 각혈을 샅샅이 핥아라



시작 메모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견디는 것은 성스럽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고통을, 삶을, 밑바닥을 초월하는 것은, 떠나는 것은, 훨훨 비상하는 것은 무지고 교만이고 사기이고 거짓이고 죄악이리. 땅바닥에 딱 달라붙자. 발을 붙이자. 오늘도 퀴퀴한 유정의 골방 창 너머 눈이 나린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