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윤 한 로
그러니까
푸른 잎사귀 속 알알이
베란다 버찌 까맣게 익어 손에 닿을 듯
어렸을 적 생각나고
동무들도 생각나고
한 종재기 훑쳐 먹어 보니
씨부리하더구나 먹을 것 없더구나
곧바로
흰꺼먹새 한 마리 날아완, 꺼꺽푸드데기
내가 찜해 놓은 버찌
내가 숨겨 놓은 버찌
누가 가져갔구나
누가 훔쳐갔구나
가만,
우리가 큰 잘못을 했네요
아무래도
이자 이놈이, 가시낸가? 내를
저 하늘에 비뚜름 반달마냥 보겠구나
시작 메모
내 동화는 슬프지 않다. 내 동화는 아름답지 않다. 내 동화 속에는 꿈이 없다. 공주가 없다. 왕자가 없고 파랑새가 없다. 내 동화 속엔 파랑새가 아니라 꺼먹새가 나온다. 겨우 겨우. 내 동화는 씨부리하다. 훑치고 훔치고 꺽꺽 운다. 그렇구나. 내 동화속에는 되잖은 교훈만 들었구랴. ‘우리 모두는 지금 큰 잘못을 하고 있다’ 따위.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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