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골
           윤 한 로



여게가 어디라고!
이우지에 사는 이 하나
텃세삼아 찍자붙다 진즉에 가고

퇴직을 하고보니
삼십년 학교도 멀어지고
사람도, 미움도, 싸움도 멀어지고
책도 멀어지니

이렇게도 별이 가까울 수가
가재골 뜨내기 혼자
말 할 일도 별로 없고, 쓸쓸히
밤 별, 빛나는 저 ‘준주성범’
펼쳐보는 재미가 쏠쏠잖다

아아, 정말 좋은 책
하루에 딱 한 줄씩만 들여다봐야겠다
내일 당장
수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작 메모
‘준주성범’이라고 손바닥만 책 한권이 있는데 정말 좋은 책이다. 천주교 신앙 서적으로 정신 생활에 유익한 훈계를 썼는데 기교니 수식이니 하나 없다. 오로지 단순할 뿐이고, 직접 표현이 어떤 문장도 따르지 못한다고 자신한다. 작은 제목만 훑어도 빛나는 밤 별과 같다. 세상 모든 헛된 것을 업신여김, 겸손히 자기를 낮춤, 헛된 희망과 교만을 피함, 역경의 이로움, 경솔한 판단을 피함, 거기에 또 ‘무슨 과실이 있다고 낙심하지 말 것’도 있는데, 이렇게 좋은 책은 하루에 딱 한 줄씩만 읽어야 하리.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