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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당나귀 신사(280) - 과일값이 이 정도라면?
과일값이 이 정도라면?


영화감독 김이 심야에 왕년의 영화배우인 장화자의 집 앞 허름한 식당에서 그녀를 기다린 것은 이유가 있어서였다. 장화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의 물질적 공세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여 상품권과 현금을 두루 섞은 봉투 하나를 건네기 위해서였다. 이 봉투를 건넴에 있어서 대낮은 왠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은행 문이 열려 있는 밝은 대낮에는 꽤 많은 돈을 건네야 할 것 같았고, 심야라면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온 거로 하면 수백만 원 정도로도 상당한 감동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계산법에 의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장화자가 자칭 사업가이자 젊은 놈인 강호영과의 잠자리도 뿌리치고 이리 달려 온 것 역시 돈과 관련이 있었다. 뭔가 빈손으로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주 몇 잔이 들어간 다음 김은 봉투를 하나 꺼냈고, “생각 난 김에.” 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이게 뭐에요?” 장화자는 일단 이렇게 물었다. 다짜고짜 ‘얼마에요?’ 하고 물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빈손으로 와서... 과일이나 사 드시라고.” 과일 얘기가 나왔을 때 장화자의 표정은 살짝 일그러졌다. 과일이 수천만 원 할 리는 없고 몇십만 원 넣었다는 얘기인데 그러고 보니 봉투의 두께로 보니 만 원짜리로 채워 넣은 것 같았다. 하긴 큰돈이면 통장으로 보냈겠지. 지가 무슨 비자금을 관리한다고 현금으로 들고 오겠나. “과일은 무슨...” 장화자는 봉투를 밀쳐버릴까 생각하다 일단 작은 거로도 기뻐하는 여인의 모습을 보이는 게 큰돈을 벌어들이는 관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오늘의 이 굴욕을 참기로 했다.
소주 두병을 마신 감 감독이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을 확인한 후 길거리에서 봉투를 확인한 장화자는 그만 눈시울이 붉어지려 하였다. 상품권 200만 원어치에 5만 원 권으로 현금 300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금액도 요긴하지만 현금과 상품권의 이 황금비율이 또 가슴을 저려왔다. 과일이 이 정도라면? 그렇다면 다음에 장이나 보라고 봉투를 내놓는다면? 고기, 생선, 과일, 포도주, 이런 게 합해진 금액이라면? 그렇다면 다음엔 3천만 원에 육박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화자는 봉투를 백에 넣고, 한참 도로를 달리고 있을 김 감독에게 작은 키스를 날렸다. 허공에 대고 하는 키스야 백 번을 한 들 어떠랴. 진자 입술을 줄 땐 이미 1억은 건너왔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아무것도 못하고 장화자를 떠나보낸 강호영은 모텔에서 텔레비전을 보다말고 잠이 들었다. 잠 속에서 말이 선두로 달리다 넘어지는 꿈을 꾸었다. 목이 말라 잠에서 깬 강호영은 이것은 길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 본 그 말이 어떤 말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내일 경마장에 가서 그 말에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나귀 형님에게도 이 정보를 알려줘 같이 좀 벌어 뵬 생각도 있었다. 인생이 보통 불쌍한 게 아닌 당나귀 형님이었다. (다음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출 판 일 : 2015.11.22 ⓒ KR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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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음   글 당나귀 신사(281) - 저 따라 한 번 해 보세요
이   전   글 당나귀 신사(279) - 텅 빈 지방공항보다 더 한 공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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