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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이 장악한 현대사회의 단면을 잘 표현한 대표작 `하늘다리`에는 런 그의 경험과 문학관이 잘 묻어있다.
본지를 통해 소개되는 수필 `당나귀 신사` 역시 돈에 관한 이야기다. 돈과 경마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 보게 될 `당나귀 신사`는 가벼운 듯 하지만 결코 가볍지만 않은 우리들의 진솔한 이야기다. (편집자주)
우영창
- 경북 포항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 동서증권 지점장 및 대우증권 영업부장 2003년 퇴사
- 1985년 동인지 <판>으로 등단
- 대표작 제1회 계간 <문학의 문학> 5천만원 고료 장편소설 당선작 `하늘다리`
시집 <사실의 실체> <그대처럼 빛나는 별> <구미시 이번도로>
신사 숙녀 여러분 당나귀 한 번 타보시죠
여자가 아쉬운 탄성을 내질렀다. 나는 마권을 찢으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보았다. 검고 풍성한 머리를 틀어올려 핀으로 고정시킨 중년 여자는 옆의 남자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패배를 수긍한 루저의 싱싱한 얼굴이었다. 여자는 블라우스 위에 흰 니트를 걸치고 있었다. 니트가 푸른 스커트를 반 쯤 덮고 있었다. 경마장 높이 뜬 달이 그녀의 전신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때 무엇인가 나를 침범했다. 나는 막판에 추월당한 내 말을 용서하고 있었다. 그 말에 건 내 미련한 판단도 용서하였다. 무엇이었을까? 그날 밤 과천 경마장 관중석의 내 속에 비집고 들어온 것은? 내가 그날 밤 느낀 것은 한 여인의 초월적인 아름다움만은 아니었다. 여자는 내게 잃어버린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승부에만 초조해하는 꾼과는 다른 나의 모습이 그리워졌다. 말이 내뿜는 거친 호흡과 질주의 역동성과 아름다움, 기수와 말의 뜨거운 교감이 내 눈에 들어온 건 그날 밤 이후였다. 패배한 기수와 말의 그림자가 겹쳐 보인 것도 그 다음이었다. 그 일로 나는 확률이 더 높아지지도 낮아지지도 않았다. 다만 나는 경마를 얼마간이나마 사랑하게 되었다. 여자는 내가 만나고 싶어 했던 나의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소설가다. 소설가니까 저런 낭만적인 소릴 하는구나 싶을 것이다. 부인하지는 않겠다. 소설가이기 이전에 나는 이십년을 증권회사에서 근무했다. 쉬지 않고 주식을 사고팔았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초단기 매매를 하면서 숫자가 핑핑 바뀌는 걸 봐왔다. 큰 금액도 거래했지만 내 일상은 그대로였다. 삼겹살에 소주, 치킨에 호프, 그리고 모자라는 생활비. 때론 계좌가 텅 빌 때도 있었다. 그 돈은 어디 간 것인가? 분명 이길 때도 있었는데. 혹시 경마팬 여러분도 그러신가? 왜 우린 이런 쳇바퀴 도는 투자를 계속 하게 되는 걸까? 그런 얘기를 포함해서 온갖 시시콜콜한 얘기를 이 난을 통해 나눠볼 것이다. 혹시 아는가? 당나귀의 특별한 베팅 법칙이라도 있을지.
‘경마문화신문’에서 흔쾌히 지면을 내줘 일주일에 한 번 경마팬 여러분을 만나 뵐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경마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마와 경마팬을 좋아하는 마음만은 전문가 못지않다. 경주 틈틈이 좀 쉬어가시라는 의미에서 칼럼제목에 당나귀를 넣기로 했다. 말보다 빠르지는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구경하며 가자고 말이다. 스스로를 신사라고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신사들을 대변해서 당나귀 뒤에 감히 신사를 붙여보았다. 숙녀분들은 이 이름에 너무 고까워하지 마시기 바란다. 신사라는 자들이 얼마나 허황된 자들인지 곧 알게 될 것이다. 알고 있으시다고요? 가만, 시간이 다 되었네요. 신사도 마권 사러 가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 틈에 있거든요. 다음 주에 뵙지요.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