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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영화배우 장화자는 강호영이라는 조연배우 출신의 젊은 사내와 참치집에 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사케를 서너 잔 마시니 적당히 술이 오르며 인생이 좀 만만해 보였다. 그리고 그동안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누가 봐도 뇌쇄적인 몸매와 빼어난 미모를 동네 주민이나 편의점 알바들에게만 보여주고 강남 쪽 사람들은 배려를 하지 않았다는 자책과 함께 못 사내들에게도 인색하게 굴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전화를 하자 바로 논현동으로 달려와 이렇게 고급참치에 사케를 대접하며 기분이 업 되어 있는 이 사내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내들이 손만 내밀면 이렇게 달려 와 줄 것인가 하는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최근에 만남을 갖고 있는 왕년의 감독 김씨의 경우 뒷돈이 상당히 있어 보이는 것이 앞으로가 기대가 되었다. 이러한 기대를 품고 젊은 사내와 술자리를 함께하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술자리가 끝나면 함께 어디론가 갈 수도 있고 아니 갈 수도 있지만 그녀는 웬만하면 가는 쪽으로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사내와 밤을 보낸 게 석달도 전인데다 아무 놈이나 몸을 섞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뭉칫돈을 내놓을 작자도 마땅치 않아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소위 가정주부들이 그녀 같은 여자를 어떻게 보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들은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살림을 하며 아이들 교육에 신경 쓰고 시댁과 처가댁을 오가며 틈틈이 소박하게 여행이나 문화생활을 즐겨보려는 여인들이었다. 그녀들이 볼 때 아이만 있고 남면도 안 보이는데 어디 가서 특별히 일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돈은 어디서 나서 명품쪼가리를 휘감고 다니는지 의아함과 함께 분노가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생긴 건 왜 그리 도도하게 생겨 어디 인사라도 하고 다니겠나 싶은 게 입방아 찧기 딱 좋은 상대였던 것이다. 얼굴에 남자 등쳐먹고 사는 인간이란 딱지가 딱 붙어있었다. 그랬다. 등쳐먹는 게 뭐 그리 나쁜가. 어차피 뭐 해서 벌었는지 모르는 돈 좀 당겨 오면 어떤가. 못 하는 게 병신이지.
그녀는 강호영의 눈이 풀어지는 것을 보며 가볍게 눈썹을 찡그렸다 취한 남자는 싫었다.. 제대로 된 사내라면 적당히 마시고 분위기를 간직한 채 여자를 부드럽게 리드해야 마땅했다. 이 자는 뭉칫돈을 내놓을 자는 아니고 같이 유원지를 쏘다니거나 홍통 3박4일 정도는 다녀올 만한 사내였다. 홍콩도 주식과 카지노와 경마가 성행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경마장에 자신 같은 미인이 나타나면, 보는 눈이 있다면 홍콩의 경주마들도 환호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중엔 미인에게 잘 보이려고 열심히 뛰는 말도 있을 것이었다. 그 말에 걸면 돈을 좀 벌 것이었다. 장화자는 그런 생각 끝에 이 자와 홍콩에 한 번 가봐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장화자는 수시로 결심을 하는 여자였다.
.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