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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인생을 한 번 살아보려면
어느덧 밤이 깊어 장화자와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영화감독 김은 장화자를 오늘 저녁 블루로얄 호텔 로비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상태 그대로, 즉 흠집을 내거나 깊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인데 여기엔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신사의 이미지를 심어줌과 동시에 갈망의 시간을 좀 더 늘려 몸과 마음이 크게 고양된 상태에서 그녀를 취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오늘의 아쉬움은 그만큼 더 큰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장화자는 물론 생각이 달랐다. 뒷돈이 꽤나 있어 보이는 이 자가 기껏 보쌈과 영화관람과 카페에서의 노닥거림 등 몇 시간을 투자하고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본격적으로 여자를 취하겠다는 욕심을 품는다면 그건 속도위반이요 어불성설이었다.
장회자의 관심은 이 허약하고 왜소하고 추레해 보이는 사내가 뒷돈을 얼마나 갖고 있는냐인데 그 돈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그녀가 취해야 할 행동 또한 달라질 것이었다. 돈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다면 속전속결로 뽑아내고 차버리는 게 현명할 것이고 규모가 중 정도라면 적당히 뜸을 들이다 두세 번에 걸쳐 뽑아내면 될 것이었다. 만약에 돈의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싶으면 장기전으로 들어갈 태세를 갖추어야 할 터였다. 한두 번에 뽑아냈다가는 고소를 당해 법정에 설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었다. 실제로 주위에 좀 나간다 하는 것들이 돈 있는 사내들에게 들러붙어 온갖 감언이설과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곤 연락을 끊는다거나, 적반하장격으로 관계를 폭로하겠다며 추가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물듯이 남자가 가정 깨질 각오를 하고 경찰에 신고라도 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자의 돈을 야금야금 나의 주머니로 이동시켜야 뒤탈이 없을 터였다. 그리고 이 정도 돈은 쓸 만 했다는 어느 정도의 만족감도 줘야 하며 심한 경우 남은 재산을 다 들고 와 한번만 더 만나달라는 지경에 이르러야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단계적 과정에 있어 장화자는 상당한 노하우가 있었고 실제로 성공사례도 있는바 그렇게 번 돈을 한 때 붐이 일어난 와인바에 투자만 하지 않았다면, 그 돈을 삼성전자 주식에 묻어만 뒀더라도 아무리 이혼녀 신세가 되었다 한들 오늘날 이토록 생활비에 쪼달리는 신세가 되진 않았을 것이었다. 이제 그런 방면의 경험도 쌓이고 이번에 이 사내에게서 돈만 좀 뜯어내면 `제대로 한 번 인생을 살아보리라` 결심을 속으로 하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