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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여배우
남자에게서 돈냄새를 맡은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는 뉴욕풍의 카페에서 남자와 함께 나와 다음 단계로 영화관을 향하였다. 이것은 탁월한 선택으로 여배우와 감독이라는 면에서, 남자와 여자라는 면에서, 또한 밤 10시의 심야상영이라는 면에서 매우 실용적이면서 로맨틱한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술집과 산책과 카페로 이어지는 일련의 데이트 코스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고 분위기를 끌어갈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물론 영화관은 남자에게는 고역이자 지루한 곳일 수도 있었다. 액션이나 스릴러 같은 게 아니라 무슨 로맨틱 코미디나 멜러나 또는 황당한 가족 시츄에이션이나 이런 걸 여자와 함께 보는 순간 온몸이 오그라들거나 하품을 하거나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치며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짧게는 1시간 반에서 길게는 두 시간여를 꼼짝없이 그 박스 같은 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쉴 새 없이 팝콘 봉지 바스락거리는 소리, 조금만 기미만 줘도 웃어대는 젊은 여자관객들, 거의 모텔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애정행각을 과시하고 있는 쌍들, 늦게 입장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는 와중에 당당히 퇴장하는 무매너들, 이런 모든 것이 비위에 거슬리면서 소위 감독이면서도 일반 영화관은 잘 가지 않게 된 것이다. 대신 무슨 예술영화감독처럼, 독립영화나 소수영화 또는 예술영화 등을 가끔 관람하였는 바 그런데서 우연히 동료나 선후배를 만나 관람 후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었던 것이다. 영화에 대한 우국충정과 같은 신념을 토하다, 술자리가 끝날 땐 누가 술값을 내나 신경 써야 하는 게 감독들의 경제 사정이었다. 그런 감독들에겐 여배우도 잘 따르지 않아 전화를 걸어 불러낼 여배우도 없는 것이다. 전화를 하면 ‘저 인간이 언제 봤다고 함부로 전화를 하나’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장화자가 지난 주 감독의 전화에 응해 그날 소주에 낙지를 먹고 그것이 연결이 되어 오늘 이렇게 이 시간에 영화관까지 앉아 있게 된 것인데 이는 아주 흔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의 영화는 아니나 다를까 뉴욕과 파리를 오가는 로맨틱 코미디로, 눈뜨고 봐줄 수 없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여배우를 내세웠지만 그녀가 참 고생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한심한 영화였는데, 사랑을 지상의 목표로 삼고 간간이 섹스를 하는데,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여자가 삐지기도 하고 들이대기도 하고 하여튼 복잡다단한 영화였다. 이 영화에 장화자는 소위 명색이 배우인 여자가 흠뻑 빠져 울고 웃으며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받은 깊은 감동을 지금 옆의 남자에게 신체적으로 전달하려 하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