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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비밀을 알아내라
왕년의 영화감독 김과 뇌쇄적인 몸매의 여배우 장화자는 데이트의 한 코스로 영화관에서 로맨틱 멜러물을 관람하였는바, 남녀간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사지를 떨고 있는 장화자를 감독은 이 밤이 가기 전에 잘 보듬어야 할 책임감을 느꼈다. 그런 무거운 책임감을 가슴에 품고 있는 감독에게 장화자가 자신의 집 근처에서 한 잔 더 하자고 했을 때 감독은 승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화자가,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이 조잡한 짓거리들을 순서 없이 저지르다 마지막에 가서 오해를 풀고 극적으로 재결합하는 것을 보고, 이러한 감흥을 현실세계에서 좀 더 이어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욕구를 감독은 충분히 이해했다. 특히 혼자가 아니라 그와 함께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에 크게 찬성을 하였고, 이에 두 사람은 택시를 잡아타고 바람같이 달려 그녀의 집 앞에 당도하게 되었다. 택시 안에서도 영화관에서처럼 무릎과 팔뚝이 닿았다 떨어졌다 하여 감독은 구름 위를 걷는 듯했는데, 이런 감촉을 선사하는 여인을 완전히 벗은 상태로 끌어안고 있다면 그 느낌이 어떠하겠는가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장화자는 이 초췌하고 왜소한 사내와의 육체적인 관계는 사실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자에게 무슨 수상한 돈이 있는 것 같고 그 때문에 좀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능하면 오늘밤 그 돈의 비밀을 알아내고 싶었다. 해서 왜소하고 초췌해도 자신의 넉넉함으로 감싸 안을 것을 맹세하고 있었다. 물론 최소한의 배려만 할 작정으로 오늘밤 바로 사건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안타까움이 극에 달해 스스로 뒈지더라도 시간을 좀 끌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두 사람은 장화자가 일찍이 가본 적이 있다는 웨스턴 스타일의 바를 찾아 갔다. 사실 바에 앉아 스카치를 홀짝이며 서양음악을 듣는 시간을 감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뭐하러 이런 데 와서 비싼 돈 내고 하염없이 앉아 있는가 싶기도 하고 이런다고 여자들이 이 다음 코스는 모텔임을 수락하겠는가 말이다. 아까 저녁 때 보쌈에 소주를 먹을 때만 해도 그 서민적인 취향에 박수를 보낸 감독이었지만, 여자란 배가 부르면 본래의 습성대로 감성적인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구나 싶었다. 감독이 바 앞에서 별로 신통찮은 얼굴을 하고 있자 장화자는 “다른 데 갈까요?”하고 갑자기 말했다. 이 정도 눈치와 센스 있는 여자는 드문 법인데 감독은 가슴이 찡 울려왔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