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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돈이 있는 남자가 좋다
영화감독 김은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와 함께 카페에서 주머니를 점검하던 차 깜짝 놀라 온사방을 지갑을 찾으러 다니다 그녀의 조언을 듣고 바로 카드회사에 신고하였는바, 밤 11시 현재 분실카드의 사용금액이 총액 27만원이란 이야기를 카드회사 직원으로부터 듣고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추후 이용정지를 당부하였다. 장화자는, 김이 27만원이란 금액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 걸 보고 그가 과거의 그 찌질한 김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더불어 카드의 사용한도 및 카드와 연계된 계좌의 현금규모가 매우 궁금하였다.
장화자는 김의 씀씀이가 과거와는 달리 시원시원하고, 어느 장소를 가도 계산에 대한 두려운 기색 없이 다만 대화에 주력하고자 하는 걸 보고, 아하 뒷돈이 만만찮구나 하는 걸 짐작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7만원이 도적질 당했는데도 오직 이용정지의 확인에 주력하는 걸 보고, 270만원이었어도 이 인간이 크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다시 카페로 들아와 자리에 착석하였는데, 장화자는 여기 계산은 내가 해야 되겠다고 작정하였다. 사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호감을 사고 배려 깊은 여자라는 인상을 주려는 속셈에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데이트 도중 가벼운 계산 정도는 자진해서 함으로써 상대로부터 백배의 보상을 받는 여자들을 많이 봐온 그녀는, 그녀 또한 백배 천배 아니 만배의 보상이 돌아오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시간은 이제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장화자는 취침시간이 새벽 네 시는 기본이고 어떤 땐 날밤을 꼬박 새기도 하였다. 심지어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그때부터 자는 날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겨우 자정이라면 사건이 벌어져도 여러번 벌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딸아이는 이웃집 아는 동생에게 맡겨 놓았는데, 그 집에서 데리고 자겠다는 반가운 소리를 이미 들어 두었다. 내일 아침 일찍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면 미국에서 직배로 온 앙증맞은 인형이나 아는 동생에게 하나 안길 작정이었다. 그녀의 못난 딸이 갖고 놀기엔 좀 과분하지만 말이다.
“카드가 없어 낼 당장 불편하신 거 아니에요?” 장화자는 카드 분실에 대한 어려움을 우리 함께 겪자는 투의 근심어린 얼굴을 보였다. “뭐 괜찮습니다. 현금으로 쓰죠.” “그만하기 다행이에요.” “혹시 모르니 앞으론 일일한도 상한선을 지정해 둬야겠어요.”
상한선을 지정한다? 과거의 김 감목 같으면 그런 거 굳이 신청 안 해도, 설령 돈이 다 빠져나가도 일일 30만원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돈의 전체 규모는? 이러한 궁금증 이 장화자를 들뜨게 하고 흥분시켰다. 그녀가 가쁜 숨을 내쉬는 걸 보고 감독은 이는 필히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분실, 도난 이런 말에 육체적으로 흥분하는 여자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