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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출처와 사용 방향을 밝혀라
왕년의 영화배우 장화자는 복권 탄 돈을 숨기고 있는 영화감독 김과 보쌈에 소주를 먹고 달이 환하고 별이 빛나는 밤 아래 산보를 좀 한 다음, 그 외양이 뉴욕이나 파리에나 있음직함 카페를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아직 장화자는 이 남자에게서 돈냄새가 좀 난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었고 구체적인 상황은 모르고 있는지라, 그저 소박하게 있는 돈 좀 나눠 쓰자는 취지로 접근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저러한 분위기 나는 카페에서 사내를 말랑말랑하게 만든 다음 스스로 돈의 규모와 출처와 사용방향을 실토하게 할 참이었다. 감독은 그러한 사정은 모르고 그저 이 뇌쇄적이고 미모가 출중한, 비록 자식이 있고 이혼녀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여자의 외로운 마음을 좀 달래고 아픔을 함께 할 방도를 강구해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건, 카페나 분위기 있는 어떤 장소하곤 상관없이 그저 아무데나 즉 라면집이나 국밥집에서라도 가능하였고, 괜히 두리번거리게 되는 멋진 카페는 오히려 부담이었다. 그러나 날이 날이니만큼, 또한 보기 드문 미녀와의 동행인지라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할 성싶었고 해서 장화자가 이끄는 대로 카페로 입장하게 되었다.
카페는 고즈넉했는데 음악이 잔잔히 깔리고 있었고, 실내장식은 무슨 판화나 드로잉 작품 같은 것이 벽면에 몇 점 걸려 있을 뿐 상당히 심플하다 할 수 있었다. 오색전구라도 여기저기 달려 있으면 좀 요란하군, 촌스럽군 하고 마음 편히 있겠는데, 이러한 조용하면서 뭔가 사람의 마음을 시험해보는 듯한 카페가 신경이 쓰였으나. 마주 앉은 장화자의 미모가 워낙 출중하여 이 카페 분위기마저 제압하고 있었기에 감독은 거기 묻어가는 기분으로 가슴을 펴고 그녀를 보며 미소 지었다.
카페라 해봐야 지가 양주나 맥주를 팔아봐야 얼마 하겠냐는 마음이 있었는데, 장화자는 술 이 아니라 이름이 어려운 커피를 주문했고, 이에 감독도 아는 이름인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여 두 사람은 커피 커플이 되어 앉아 있었다.
“전 그래요. 가끔 서울에 있어도 여기가 고향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어요,.”
장화자가 말했다. “고향이 어디 다른데?”
“아니 서울이에요.” 근데 이게 뭔 소리인가. 고향이 서울이면 서울이지 뭐가 안 느껴진다는 건가. “프라하에 갔을 때 오히려 친밀감을 느꼈어요,” 감독은 그녀가 왜 거기서 친밀감을 느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요즘 여자는 분석이 매우 어려웠다. 파리도 도쿄도 뉴옥도 아니고 프라하라... 좀 예술 냄새가 나는 것이 그녀를 예술작품으로 보이는 데 한 몫 기여하고 있었다. 감독은 “난 천호동에 가면 고향 기분이 납니다.” 말해놓고 아차 싶었으나 그녀는 미소만 짓고 있었다. 의외로 속이 넓은 여자였다. 무종 같은 자를 넉넉히 품에 안을 수 있는 여자인 것이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