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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는 남자에게 복이 있나니
아무리 여자가 마음에 든다 할지라도 하루아침에 다 접수할 수는 없는 것이다. 40대의 영화감독이자,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어 주머니와 통장에 돈이 가득한 남자는 눈앞의 여자 즉 왕년의 여배우, 한 미모와 몸매 하는 장화자를 보며 우리의 인연을 길게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 한 번 내실래요?” 하고 미끼를 던져두었으니, 뭔가 돈냄새 비슷한 게 풍기는 남자의 제안을 그녀가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서쪽에서 귀인이 온다고 정초에 역학을 좀 전공했다는 후배 년의 얘기를 들은 바 있었는데, 그때는 웃고 넘겼지만 이제 웃어넘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서대문 방향으로 간다는 귀인을 전송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주 두 병과 산낙지 두 접시를 나눠 먹은 두 사람은 술집을 나서 빈 택시가 즐비한 거리로 나섰는바, 감독은 직접 택시를 잡아주며 기사에게 5만원 권을 건네고 손님을 잘 모시라고 당부하였다. 기본요금이면 나올 거리를 만원도 아니고 5만원이라니. 장화자는 이 사내가 한 때의 궁상맞은 인간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혹시 어디 감독료라도 댕겨 받은 게 있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인간이 술값은커녕 된장찌개 값 내는 것도 본 기억이 없는지라 감격했다기보다 다소 당황스러웠다. 장화자는 4만7천원을 돌려받아 내일 장을 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장화자를 태운 택시는 감독의 배웅을 받으며 떠났다.
감독은 이 정도 시점에서 여자를 정중하게 택시에 태워 보낸 자신의 결단에 대해 크게 만족해하며 앞날을 위해 순간의 충동을 참은 자신을 치하하였다. 그런데 너무 오래 여자를 그리워했던가? 너무 장시간 눈앞의 여체를 보고만 있었던 것인가. 거기다 산낙지를 먹은 게 서서히 작용을 하는 것인가. 육체적 충동이 제어가 안 되게 일어나고 있어 감독은 좀 걷기로 하였다. 걸으며 좀 식혀 볼 작정이었다. 이대로라면 유곽에라도 가야 될 판이어서, 그런데 거길 갔다간 돈을 100만원도 쓰기 전에 거기가 허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며- 돈이 없을 땐 결코 그런 사치스러운 우려는 하지 않았다- 잠시만 참자 잠시만 참고 다음에 그녀를 만날 때 행동에 옮기자 싶었다. 아니지 그 사이에라도 내일이라도 누군가를 만나 원나잇을 보내는 걸로 방향을 잡아보자.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묵묵히 걷고 있었다.
아, 장화자. 오직 너에게 없는 게 돈 하나다 이건가. 그거라면 좀 감당할 수 있을 터. 너는 나에게 오지 않겠는가? 1년만이라도 아니 3개월만이라도 우리 감정을 좀 교류해 보지 않겠는가? 영탄 속에 우리의 미래를 꿈꾸며 감독은 이제 그 존재가 귀한 모범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는 마치 제왕을 모시듯 정중하게 그를 맞아들였다. (다음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