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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과 시선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가,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숨기고 돈냄새만 계속 풍기는 영화감독 김을 유혹하기 위해 취한 행동이 휴대폰을 작동하는 척 몸을 숙이고 가슴을 강조한 것이었다. 김은 물론 그녀의 가슴을 보았다.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왜 동서고금의 시인이 그토록 여인의 가슴을 찬양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동서양의 화가가 왜 여인의 풍만한 가슴을 즐겨 화폭에 옮겼는지 그 이유도 알게 되었다. 참을 수가 없고 찬미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무엇이 그녀의 가슴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성적 충동만은 아니었다.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움과 약동하는 생명이 거기에 담겨있어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김은 다음과 같은 사실까지 깨달았다. 여인의 가슴은 그 가슴을 달고 있는 여인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가슴은 한 여인의 육체에 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대지에 속하고 허공에 속하고 우주에 속하고, 순간에서 순간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아름다움에 속해 있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오로지 가슴에 시선을 주는 자신과 같은 사람의 몫이었다. 오, 시선이 없으면 아름다움도 없고 느낌도 없고 감동도 없는 법. 시선에 의해 여인의 가슴은 발달하고 충만해지며 존재의 가치를 드높이는바, 김 감독은 장화자의 가슴과 자신의 시선이 만나는 그 접점, 그것을 예술의 한 양식이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이러한 감독의 느낌과 상념을 알 리 없는 장화자는 다만 가슴을 숙임으로써 노출의 의미를 강화하려는 의도에 속해 있었다. 그런 속된 그녀를 구원한 것이 곧 감독의 시선이었으니 아마도 이러한 사실은 그녀가 영원히 모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이 앞으로도 번번이 노출되어 감독을 커다란 감동 속으로 몰아넣으리라는 것도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여기는 심야의 카페였다. 커피 향기와 와인의 시큼한 냄새가 감도는 가운데 음악의 선율이 달콤하게 핏줄을 타고 흐르는 곳이었다. 또한 순수하고 차원 높은 감독의 시선이 그녀를 구원하고 동시에 그녀의 존재를 축원하고 있는 복된 시간이 흐르고 있는 곳이었다. 이제 충분히 가슴을 노출시켰다고 판단한 장화자는,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자세를 바로 하면서 아직도 멍한 눈으로 가슴이 있던 공간을 응시하고 있는 감독을 발견하였다. 완전히 맛이 갔구나. 장화자는 그렇게 결론짓고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고 감독은 꿈에서 깨어난 듯 서서히 시선을 들어 장화자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불꽃은 아니고 전류도 아니고 거기엔 어떤 갈망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