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신사(266) - 하품에는 웃음으로

↑	우영창(소설가, 시인)

강호영과 장화자는 논현동의 대형찜질방 남녀공용휴게실에서, 사람들이 주로 여자들이 드러눕거나 앉아 있거나 비스듬히 누워 허벅지에 한 손을 대고 있고나 엉덩이를 실룩이며 돌아다니거나 하고 있는 가운데 별 대화 없이 텔레비전의 연예프로를 보고 있었다. 부부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주로 오는 이곳에 찜질방 복장으로 나란히 앉아 자기들끼리 웃어대는 연예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니 속으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강호영은 지을 수가 없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모텔 베드에 누워 작업 중 잠시 휴식시간에, 또는 부른 배를 만지며 식당에서 봐야 하는 건데 아무 짓도 할 수 없는 찜질방 휴게실에서 이 무슨 시간 낭비인가 싶었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나란히 앉아 서로의 냄새를 맡으며 슬쩍 부딪치는 팔뚝이나 허벅지나 대퇴골의 감촉을 느끼며 은근히 도발되는 게 나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강호영은 모텔에 입장할 시 먼저 씻고서는 고요히 베드에 누워 여자가 샤워하는 물소리와 그 골고루 씻는 모습을 상상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면서 주식이나 경마프로그램을 보는 걸 좋아했다. 여자가 뭘 가린다고 타월 같은 걸 몸에 두르고 나와 그게 벗겨지는 걸 보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밤은 시작되는 거고 밤이란 주로 그런 용도에 바쳐져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처럼 사전 준비기간이 길었던 건 예전에 없던 일이었다. 장화자는 그렇게 정성을 들일만한 여자였다. 특히 장화자가 오늘 내내 돈에 대해 별로 아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은 건 좋은 조짐으로 보였다. 큰돈 들 일이 없을 뿐더러 여차하면 좀 뜯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강호영이 정확하게 본 것이 장화자는 남자가 있었다. 물주가 있는 것이다. 그 자는 왕년의 영화감독으로 복권 1등에 당첨된 인간이었다. 장화자는 그 자가 자신에게 완전히 빠져 있다는 것과 뒷돈이 좀 있어 보인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빈약한 체구에 추레한 몰골을 하고 있어 함께 뭘 하는 게 내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해서 언제 어떻게 그 자와 베드를 함께 사용할지 모르는 판국이라 미리 젊은 놈에게 몸을 좀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강호영이라는 왕년의 조연배우이자 현재는 뭔 사업을 한답시는 작자를 점찍은 것이다.
“나갈까?” 강호영이 하품을 하며 말햇다. 어쭈 이 자식 봐라. 장화자는 자신 앞에서 하품 하는 인간을 본 적이 없으므로 비록 거짓 하품이라 하더라도 적이 기분이 언짢았다. 나가서 어디 좀 가자는 건데 처음부터 예의를 지켜야지. 그러나 장화자는 “그럴까?” 하고 웃어 주었다. 하품에는 하품이 아니라 웃음으로 대해주는 게 그녀의 대범함이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