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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영은, 장화자가 샤워를 하는 동안 알몸으로 모텔 침대에서 축구를 보다 말고 ‘내일 경마장에서 보자’는 당나귀 형님의 전화를 받고 잠시 형님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작년 겨울이었다. 그날따라 과천 경마장엔 많은 벗들이 모여 환호하가나 낙담하거나 에이 하고 아예 포기하거나 그래도 마지막 찬스를 보겠다고 각오를 다지거나 하고 있었다. 마지막 레인을 앞두고 화장실에 간 강호영은 옆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 사내가 유독 힘없는 오줌줄기를 뿜으며 한숨을 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뭐 돈을 잃었거나 아니면 자신의 힘없는 오줌줄기에 대한 자괴감에서 나오는 소리일 것이었다. 뭐 그런 사내가 한 둘인가. 대수롭지 않게 보고 시원하게 소리도 힘차게 소변을 보고 나온 강호영은 운이 좋으려고 마지막 레인에서 중박을 터뜨렸다. 1주일은 삼삼한 경숙이 하고 산천을 주야로 놀러 다닐 수 있는 꽤 두둑한 금액이었다. 그동안 갖다 바친 돈은 생각 안하고, 이 방면은 내가 천재인가 보다 하고 자화자찬한 강호영은 휘파람을 불며 경마장 마닫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벗들이 오늘도 희비가 엇갈리며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옆에서 어떤 사내가 전화를 받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며칠만 기다려 주십시오. 재가 어떻게든 마련해서 갚겠습니다.... 네
이번에 정말입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 제발 그런 무서운 말씀은..... 죄송합니다..... 네 내일 오전에 전화를 올리겠습니다.... 네..네네. ” 사내는 이런 대사를 하며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뭐 돈 빌린 인간이 세상에 한 둘인가. 사업이 안 되어 치킨 가게가 안 되어, 마누라가 쇼핑에 너무 질러, 어떤 년에게 협박을 당해, 주식을 미수로 샀다가 깡통을 당해, 더 이상 빌릴 데는 없고 대부업자나 개인사채업자에게 고금리로 빌렸다가 저런 협박 전화를 받는 자가 한 둘이겠나. 자신만 해도 대부업자와 형님 아우 하며 많은 친분을 쌓았음에도 돈 갚을 때가 되면 언제 봤냐는 듯이 협박을 당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내, 자세히 보니 아까 화장실에서 힘없이 소변을 보던 바로 그 사내 아닌가! 아마 마지막 레인에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차비만 남겨 가는 모양이었다. 경마도 어느 정도 여유자금이 있어야지. 급하게 한 탕 하겠다고 덤벼들다간 결국 그 결과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 되기 십상이었다. 강호영은 그때 누님에게 용돈을 월급 형태로 받고 있어 다소 여유가 있었고 이제 오늘 번 돈으로 경숙이와 놀러 갈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이 사내를 보자 과거의 비참했던 자신이 생각나며 동정심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아, 나한테도 동정심이란 게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사내에게 말을 붙였다.
“저 괜찮으십니까?”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