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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없이는 만남도 진행도 없으니
“우리 이제 뭐 할까요?”
왕년의 여배우이자 뇌쇄적인 몸매의 장화자가, 왜소하고 생각이 많고 결단력이 부족한 감독에게 물었다. 둘은 블루로얄 호텔 로비에서 만나 호텔 뒷골목에서 보쌈에 소주 두 병을 나눠 마시고 좀 더 뒷길을 따라 호젓하게 산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 밤하늘에 별도 반짝이고 달도 둥그렇게 뜨고 가로등도 빛을 던지는 등 분위기가 매우 낭만적이었다. 여자란 분위기 따라 마음이 고양되었다 처졌다가 하는 존재로 심하게 이야기하면 분위기 없이 남녀의 만남은 없다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 존재였다. 여배우인데다 몸매가 워낙 뛰어나 연기력보다는 몸매로 한 몫 한다는, 본인이 생각하기엔 다소 억울한 판정이 내려져 있는 장화자이지만 그녀 역시 분위기에 한해서라면 결코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어떤 여자도, 판사 부인도 학교 교사도 전업주부도 심지어 이동격투기 선수까지 분위기 없이 만나려들다간 그 결과가 결코 좋지 않다는 건 우리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장화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위기 없이 만남 없고 분위기 없이 진행은 불가하다는 면에 있어서 그녀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침 오늘 분위기가 매우 고조되어 있고 자연환경도 두 남녀를 돕고 있었다. 거기다 아무리 분위기라 하더라도 분위기 속 뭔가를 감지하는 안테나가 형성되어 있는 게 또한 여자인데 오늘 이 왜소하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감독에게서 왜 이렇게 지폐 냄새가 날까 내내 하고 장화자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지폐도 만원 권도 오만원 권도 아니고 지폐를 넘어 숫자로 존재하는 것 즉 통장에 숫자가 길게 찍혀 있는 그림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던 것이다.
숫자로 돈을 관리하는 자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장화자는 맡고 있었는데, 여기에 분위기가 상승작용을 해 자신이 우월한 몸매를 갖고 있는 것도 잊고 그만 이 남자의 팔짱을 다정하게 끼고는 “이제 우리 어디로 갈까요?” 같은 보채는 듯한 발언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녀의 마음상태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감독은 여자의 향기와 감촉과 다정한 목소리에 온 몸이 녹아드는 상태에서 ‘어디로 가든 너만 있으면 되지’ 하는 마음까지 들며 그러나 어딘가로 가긴 가야 한다면 그곳은 그녀가 완전히 몸이 녹아드는 그런 곳이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 곳이 어디일까?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