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모범택시를 타고 가며
여배우 장화자를 일반택시에 태워 보내고 본인은 모범택시를 탄 영화감독은 이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범택시 기사는 하루종일 허탕을 치다 이제야 겨우 귀인 한 분을 모셨는지 정성을 다해 차를 몰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차를 잘 다뤄 손님이 편안하게 모셔지는 느낌이 들도록 하고 있는 거였다. 기사는 승객이 외국인 즉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아닌 것에 상당히 놀라워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대한민국 사람이 모범택시를 잡고 일말의 망설임이나- 대다수 승객은 손짓으로 불러놓고는 막상 모범택시가 눈앞에 서면 내가 눈이 삐었구나 하며 얼른 떠나시라고 손사래를 치기 때문이었다.- 후회없이 단번에 타서는, 뒷자리에서 요금 올라가는 거 가슴 조이며 보기는커녕 뭔지 상념에 잠겨 있기 때문이었다. 모습으로 봐선 그렇게 부유한 상을 타고 나거나 곱게 자라온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러기는커녕 세파에 찌들고 괄시도 많이 받아본 자 같은데, 말하자면 기사 자신보다 팔자가 나아보이진 않는데 어찌하여 그는 딋자리에 나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가 이러한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물론 어쩌다 마음 약한 놈이 택시를 잡아놓고 에라 모르겠다 타기는 하는데, 그럴 때의 놈의 표정이란 안절부절못하는 게 가련하기도 한 것이어서 그만 내려서 버스 타고 가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내공이 깊은 모습으로 좌정하고 있는 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잠시 호기심이 드는 것이다. 옆에 여자라도 하나 차고 있다면 이해가 가는데 이 자는 혼자가 아닌가.
한편 감독은 좀 전에 헤어진 장화자의 뇌쇄적인 몸매와 그 도도한 얼굴을 떠올리고는, 그러한 여인이 자신 앞에서 어떤 기대와 기미를 보고 설레는 얼굴로 볼이 발그레해 가지고 앉아 있었던 건 참으로 돈의 힘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머니와 통장에 복권 탄돈이 없었다면, 그러한 배경이 없었다면, 자신이 어떻게 그렇게 여유만만하게 산낙지 두접시에 소주 두병을 살 수 있었으며, `혹시 가정에 뭐 어려운 일이 없느냐`는 자상하고도 배려 깊은 발언을 하여 그녀를 크게 고무시킬 수 있었겠는가. `조만간 시간을 한 번 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할 수 있었겠는가. 영화감독으로 살아온 지 10여년, 히트 하나 치지 못한 감독을 그렇다고 작품성으로 칸느에도 가지 못한 감독을 누가 감독이라 부르려 하겠는가. 게다가 제작자 눈치를 보며 술자리에서도 정 가운데 위치하지 못하고 배우 눈치를 봐야 했던 아픈 기억들이 있었다. 허나 이제는 한결 여유가 느껴지는 이 포즈가 장차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에게 강하게 전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한 모습에서 그 도도한 장화자도 상당한 감흥을 느꼈으리라, 이렇게 감독은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