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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식성의 여자를 좋아하나요
왕년의 영화배우 장화자는 역시 왕년의 동영상제작자 즉 감독과 블루호텔에서 나와 호텔 뒤 음식점 골목으로 접어 들어갔다. 장화자는 호텔 로비에 있으나 호텔 뒷골목에 있으나 눈에 띄기는 마찬가지여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둘의 이 기묘한 조합에 대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번씩 쳐다보았다. 누가 봐도 우월한 미모의 여자와 왜소하고 추레해 보이는 남자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 그들 눈에는 불균형으로 보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던지는 시선에는 남자가 돈깨나 있나, 아직 팔리지 않은 부동산이 있나, 복권에 당첨되었나 같은 조롱기 섞인 물음이 내포되어 있었다. 맞다. 남자는 복권에 당첨되었다. 허나 아직은 여자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고 남자도 굳이 알리려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사실은 드러내지 않는 게 좋은 것이, 복권 당첨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어떠한 행동도 순수한 시선으로 봐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뜻 없이 한 행동조차 모두 복권과 연관되어 해석될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그러기에 감독은 복권 1등 당첨 사실을 하나님과 복권주최측과 지급 은행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밝힐 생각이 전혀 없었다. 복권 탄 거금을 은행에 꽂아두고 야금야금 쓰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특히 원금은 그대로 두고도 이자만 가지고도 외식이나 가벼운 쇼핑은 가능하다는 데 특별한 기쁨이 있었다.
아무튼 둘은 보쌈집으로 들어갔는데 이는 장화자가 선택한 메뉴였다. 그녀는 피부미용상 또는 포만감을 느끼기 위해 보쌈을 한번 씩 이용해주고 있었는데 최근에 보쌈을 먹은 게 삼주 전이니 더는 늦출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서 다른 음식들. 쭈구미니 낙지니 순대니 갈매기살이니 이런 걸 다 제켜두고 망설임 없이 보쌈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감독은 장화자가 그 화려한 미모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선택인 보쌈을 택한 거에 대해서 어떤 감동을 받고 있었다. 값을 떠나서 이러한 소박한 식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그에 걸맞는 소박한 심성을 내보이고 있어 이런 여자라면 만 끼를 사준들 뭐가 아까우랴 하는 다소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백세주도 아니고 복분자도 아닌 소주를 시키는 모습에서 그녀와 자신이 외양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썩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제가 그동안 감독님을 안다고 생각해 왔는데 제 생각이 잘못된 거 같아요. 감독님은 함부로 속단할 분이 아닌 거 같아요.”
보쌈에 소주가 한 잔 들어가자 이러한 소리를 장화자는 하였고 감독은 이것이 무슨 소리인지 한참 생각해봐야 했다. 옛날 같은 좀팽이는 아니라는 듯인지 대화를 해보면서 사람의 깊이를 알게 되었다는 건지 아리송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자씨는 편견을 깨는 사람 같습니다” 하고 감독은 화답하였다. (다음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