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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하긴 해야 해요
30대 후반의 왕년의 여배우 장화자는 40대 동영상 제작자 즉 영화감독이 야밤에 연락을 해와 차를 한 잔 하였다. 그리고 계단에서 넘어지려는 영화감독을 팔을 뻗쳐 구하고, 구한 김에 술자리까지 따라가 함께하게 되었다. 소맥에다 안주로 산낙지 두 접시를 먹은 장화자는 평소에 해산물을 먹어보지 못한 여자처럼 다소 게걸스럽게 먹어댔고, 그 왕성한 식욕은 보기에도 좋고 건강미와 활기를 느끼게 하는 바가 있었다. 잠시나마 감독은 주머니에 복권 탄 돈이 들어 있는 걸 잊고 있었다. 여자와의 술자리에서 순순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술자리에서 여자란 그거 거기 있는 자체만으로도 자리를 빛내고 감정을 풍요롭게 하고 어떤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특히 상대 여자가 아름다움과 육체적인 성숙미를 갖췄을 때는 밤의 정기와 함께 농염함이 공기에 가득하게 되고 남자는 잠간씩 정신이 혼미해지는 일이 벌어지곤 하는 바 우리의 영화감독도 그러한 상황이었다. 물론 여자는 자신이 그러한 존재인지 의식하지 못하고 그저 본능에 따라 먹고 마시고 눈웃음 치고 때로 공감의 미소를 보내고 하니 그 점이 더욱 여자를 여자다운 느낌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 하긴 해야 해요."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감독은 이 말을 꺼냈다. `하`자가 두 개
`해` 자가 두 개 들어간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영화판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선 이 말은 곧 곡해 없이 전달되었다. 즉 영화를 하나 찍긴 찍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것은 장화자를 크게 긴장시키는 말이었다. 동시에 특별한 실체가 없는 말이기도 했다. 시나리오가 있고 감독이 있고 영화사가 있어도 배우가 섭외 안 되면 크랭크 인은 먼 얘기고 투자자가 나중에 발을 빼기라도 하면 몇 년을 준비만 하다 끝나는 수도 있기에, 영화 하나 찍긴 찍어야 한다는 말로 무엇이 바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또한 수입으로 이어지려면 절차가 보통 걸리는 게 아니고 자칫 시간과 공만 들이다 돈 한 푼 못 받고 끝나는 수도 있었던 것이다. 심한 경우 재판도 걸리고 모략과 음해에 가까운 말들이 오가는 게 또한 이 영화판이었다.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하루아침에 떠서는 톱스타 흉내를 내며 오만하게 굴며 큰돈을 챙길 땐 그 뒤집히는 속을 누가 알랴. 장화자는 그러나 감독이 말이라도 그렇게 꺼낸 데 대해서는 오늘밤의 이 자리가 성과가 없다고도 할 수 없었다. 감독의 의도를 좀 더 알아 볼 필요가 있었다. 아직 몸 하나는 쓸 만한 장화자였다. 연기력도 녹 쓸었다고 할 수 없었다. 언제 벼락처럼 뜰지 모르는 데가 영화판 아닌가. 장화자는 일단 감독의 잔에 입술을 부딪치듯 잔을 부딪쳤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