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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도 여자와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무료한 시간을 때우려고 이들이 남기는 글이 있을까 싶어 찾아봤으나 이제는 어떤 글도 사진도 볼 수 없었다.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포도주 한 병에 스페인에서 공수된 만체고 치즈 그리고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하몽 세 조각을 안주 삼아 저녁으로 먹기로 했다. 날이 추워진 탓일까, 밥 대신 포도주 한 잔으로 몸을 데우는 기쁨이 참으로 컸다. 하루 중 유일하게 혼자서 낙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세상은 온통 불행한 소식으로 가득했다. 뉴스에서는 말세에서나 혹은 소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을 자주 전했다.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이유로 내연녀를 살해한 뒤 시신에 불을 지른 40대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12일 내연녀를 살해하고 불을 지른 혐의로 A 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지난달 26일 오전 11시쯤 연수구의 한 주택에서 30대 내연녀 B 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뒤 몸에 불을 질러 시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경찰은 A 씨가 다른 남자를 만나던 B 씨에게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현재 정확한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험한 세상이다. 뉴스에서는 이런 현상을 ‘이별 범죄’, ‘치정 범죄’라는 신조어로 정의했다. 2010년부터 매년 9000여 건이 발생하고 있다. 하루 평균 무려 25건꼴이다.
젊은 층만 아니라 나이와 성별을 떠나 발생한다. 이별 범죄와 관련된 층은 40대 남자가 가장 많다. 남자들은 나이를 먹어도, 결혼을 해도 애이기 때문일까. 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는 걸까. 왜 남자는 성숙하지 못할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극복하기 위해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흉기로 찌르고 성폭행을 하고 감금하고 납치한다. 무자비하게 차로 들이받는 사건이 발생했는가 하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별을 통보한 동거녀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사건도 있었다. 영화를 많이 봤는지 내연녀의 차 브레이크 연결 장치를 자른 경우도 있었다.
뉴스에서는 남자들 본인은 헤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해 ‘잘못된’ 행동을 하면 여자를 되돌릴 수 있다고 착각한다고 진단했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애정이 아니라 일종의 소유물로 인식하다가 배신감을 느끼게 되면 극단적인 분노가 표출되는 문제도 지적됐다. 또 다른 상담 전문가는 이별, 치정 범죄의 배경에 비뚤어진 애정과 그릇된 소유욕이 있다며 “주로 남성들이 가해를 저지르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성의 성적 이미지에 대한 잘못된 편견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이별이란 헤어진 뒤 다른 남자와 몸을 굴려도 상관없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는 행위다. 외국 남자들처럼 쿨해야 한다. 한이니 정이니 하는 시대착오적인 유교 사상에 아직까지 지배당하고 있다. 회사 계급 문화에는 어찌어찌 적응했지만, 친구를 통해 매스컴을 통해 패션 잡지와 클럽 문화를 통해 신식 교육을 더 빨리 흡수한 여자에게 적응하지 못하니 우리 여자들을 코쟁이들에게 헌납하는 것이다. 동방예의지국, 남존여비가 남아 있는 우리나라 남자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딜레마다. 시대가 생산한 거짓 여자들의 통곡을 외면할 수 없기도 했으리라.
어떤 남자를 만나든 살인 위협을 느끼는 그네들은 거짓말을 하고 남자를 자극하고 또 어딘가로 도망간다. 방어기제를 통해 인류의 대를 이으려는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씨받이는 여성 비하고, 씨암말과 같다고 해야 할까. 무리지어 사는 말은 안전과 편안함을 추구하기에 외부 자극이 오면 본능적으로 도망하거나 공격한다. 호기심 많은 말이 자극과 기억으로 순치되는 것처럼, 남자를 버리고 다시 돌아오는 재미로 사는 여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또 다른 남자의 내연녀나 재혼녀가 되고 병원 응급실을 찾고 기대했던 돈과 안정을 찾지 못하면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가기를 선택한다.
몸을 망가뜨려야 정신이 돌아오는, 그렇게라도 정신을 회복해 존재 이유를 알고 싶은 여자들을 재활용하듯 받아주는 남자들이 있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여자라면, 아니 최소한 집안 살림을 하는 여자라면 가장 현실적이고 재테크에 능하며 가계에 온갖 도움이 되는 정보를 꿰뚫고 있기를 바라는, 그도 아니면 순결한 처녀라도 되기를 바라는 걸레 같은 남자들도 있다.
사실 그네들은 폭력을 쓰지 않고도 명령과 교태 하나로 이런 남자들을 이길 수 있을 만큼 교활하다. 뉴스에서 더 다뤄지지 않았을 뿐 현실 남자들은, 심지어 가상 공간에서 남자들은 여자들의 행태가 더 만연하다는 걸 알고 있다. 알고도 당할 뿐이다.
물론 언론이 남성을 호도하는 문제도 있다. 그 역시 알랑방귀에 익숙한 꽃뱀에게 당할 만큼 남자들이 멍청하면서도 남 창피한 건 알기 때문에 언론도 남자를 우습게 보는 것이다. 각종 링크는 자극적 낚시질로 도배하고 광고 사진은 퇴폐로 덧칠하고 실시간 검색 10위권에는 항상 뇌쇄적인 제목을 올리는 기레기 집단의 수장들 대다수가 남자이면서 말이다.
하느님의 남성성이 여자들을 죽이는 시대가 도래해서 갑질을 하고 싶은 걸까. 그에 대항한 여자들이 남자를 걸고넘어지는 꼴이다. 왜 오늘날 여자들은 남자가, 하느님이 되고 싶은 걸까. 남성성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걸 남자도 하느님도 그리고 여자 스스로 알고 있지 않을까. 오늘날 남자들은 제3의 남성성을 탄생시켜야만 하는 건 아닐까. 호세아처럼 잘난 남자가 왜 고메르와 같은 여자를 아내로 삼아야 했는지, 전지전능한 하느님께서 왜 여자를 만들어서 고통을 허락하셨는지 근본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태초부터 그랬다지만, 유독 이 시대는 왜 이토록 잔인한 사랑을 겪고 아픔과 이별, 고통을 가장 많이 누리는 시대로 전락했을까. 원시 시대 이후 이토록 많은 인구가 지구를 지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통신의 발달로 별의별 사건을 들을 수 있어서? 자유연애와 물질만능주의가 대세라서?
아니다. 사랑이 사라진 세태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랑을 원하지 않아서다. 시대가 병들었다. 시대가 아프다. 연약한 여자들은 더 심각하다. 페미니즘, 중성화, 레즈비언도 남성이 지배하던 근대 그리고 원시 때부터 세계를 지배한 하느님께 반항하고 같아지고자 생긴 현대의 돌연한 산물이다.
하느님은 편애하지 않는다. 사랑을 받은 적 없기에 무조건적으로 사랑만 할 뿐이다. 그 사랑을 받는 인간들만 편애를 느낀다.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줄 수 있는 사랑의 자유의지학에 익숙한 인간들은 그래서 배교하거나 인간 세계에서의 이별을 선택한다.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지옥은 남들’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것도 그 연장선이다. <다음 호에 계속>
by 이준 -Copyrights ⓒ말산업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