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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8일 부모에게 터키에 있는 친구 하산을 만나러 7박 8일 여행을 가겠다며 이스탄불로 출국했다가 10일 시리아 접경지인 킬리스에서 실종된 김 모 군이 이슬람국가, IS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김 군은 지난해 10월 트위터에 지금 시대는 남자가 차별받는 시대이기에 페미니스트가 싫고 IS가 좋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정부는 IS에 가담한 김 군에게 사전죄를 적용해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사전죄는 국가 원수의 명령 없이 외국 정부에 대해 개인적으로 전투를 벌인 경우 1년 이상의 유기금고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10대 소년의 치기 어린 선택에 온 국민은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 치기 어린 10대 남학생은 남자가 차별받는다는 걸 언제, 어떻게 인식했을까. 여자가 대통령이기 때문에 막연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작년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뒤 7시간 후에야 등장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선장을 마녀사냥하는 모습을 보며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이런 아이에게 국가가 처벌을 검토하고 있다니. 이미 벌 받을 게 눈앞에 그려졌던 아이는 IS를 핑계로 세계를 향해 진군한 건 아닐까.
그렇게 미지의 세계로 떠난 10대가 있는 반면, 구질구질하게 싸우고 있는 남녀도 화제였다.
“헤어지자는 남자 친구에게 앙심을 품고 성폭행 혐의로 무고한 뒤 증거까지 조작해 법정 싸움을 벌이며 수년간 괴롭힌 여성에게 결국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이영남 판사는 무고,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된 38살 서 모 씨에게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고 3일 밝혔습니다.
서 씨는 2002년 10월 인터넷 채팅사이트를 통해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A 씨를 알게 됐고 이듬해 3월 연인 사이가 됐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A 씨가 사법시험 2차 준비에 전념하려 하니 그만 헤어지자고 말하자 앙심을 품었습니다. 서 씨는 2004년 2월 A 씨가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자신을 방에 감금하고 흉기로 위협해 두 차례 성폭행했다는 거짓말을 꾸며 A 씨를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성폭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혐의없음으로 처분했고 서 씨는 다시 항고했습니다.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는지 다시 조사하자 서 씨는 함께 홍콩에 여행을 간 적도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A 씨의 증거를 반박하기 위해 홍콩에 간 적이 있지만, A 씨를 피하려고 마카오로 건너갔다는 거짓말을 지어내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여권을 위조했습니다. 서 씨는 영문으로 된 마카오 이민국 명의의 출입국 도장을 가짜로 만들어 자신의 여권에 찍고 홍콩에 갈 때도 항공권을 따로 예매한 것처럼 이메일 문서를 꾸미기까지 했습니다. 서 씨는 또 A 씨가 나체 사진을 찍고 이를 빌미로 협박해 돈을 뜯었다는 거짓말도 꾸며냈는데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A 씨가 쓴 것처럼 서명을 꾸며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을 위조하기도 했습니다.
서 씨의 거짓 증언은 법정에서도 계속됐습니다. 결국 법원은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서 씨는 무고와 증거 조작이 탄로 나 2007년 12월 기소됐습니다. 기소 후에도 5회의 법관 기피 신청을 이유로 절차를 지연하기까지 했습니다. A 씨는 무고 된 사건으로 사법시험을 포기했고 가족까지 큰 피해를 보게 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영남 판사는 피고인은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고 이 사건으로 자신이 겪은 고통만을 강조하고 있으나 그 기간이 10년 넘게 된 책임 역시 피고인에게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여자를 잘못 만나 인생이 꼬였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해가 바뀌었어도 뉴스가 전하는 우리 사회는 변함없었다. 해 아래 새것은 없다는 말이 꼭 맞는 세대다. 남자가 여자를 상해하듯 여자는 남자를 무고했고, 링 안에서 선수들만 바뀐 채 혈투는 계속됐다. 라운드는 매회 관중들의 환호에 힘입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말과 소, 개에게 돈을 걸듯 여자와 남자 중 누가 이기는지 보기 위해 찾아든 관중들은 소비하는 시간과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은 듯했다. 게다가 언제든 그 링 위로 뛰어들 기세였다. 모두가 준비되지 않고 완성되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기에 오디션은 필요하지 않았다. 상해하고 무고할 용기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기 존재를 스스로 파탄 내고 상처 내고 지워가는 일만이 오늘을 사는 모두의 공통된 임무였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여자의 발길은 뜸해졌다. 두 주 지나 한 주 나오는, 그것도 강론할 때 성당에 들어왔다가 봉헌 시간에 빠져나가는 식이었다. 모두가 무관심했고, 나 역시 따로 만나 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메신저로 연락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자정 넘어 술 마시러 오라는 것 빼고는 일상을 공유하려 들지 않았다. 가끔은 술에 취해 한탄하거나 저주 문자나 퍼붓는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다행으로 여겼다. 여자 스스로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아니면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것뿐임을, 미련한 곰조차도 그런 짓은 달가워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알 때가 됐을 것이다. 철저히 혼자이고 외로워야 옆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 알 것이다.
이제는 남자 소식이 궁금했다. 텔레그램의 최근 접속 시간은 1월 1일이었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카카오톡에서는 여전히 사진이 바뀌면서 복잡한 심리를 표출하고 있었다.
남자 역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여자와 찍은 사진을 더는 올리지 않고 카카오스토리의 사진과 글 기록 모두 비공개로 했다는 점이다. 마음을 정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차, 긴 설 연휴가 한 주 지난 사순 제1주일에 남자가 나타났다. 넉 달 전, 여자의 생일 때 술에 취해 나타난 것처럼 이번에도 갑자기 등장했다. 그것도 마치 여자의 행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여자처럼 나타났다. 청년미사를 앞두고 누군가 고해실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아무 말이 없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굳게 믿으며 그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
“교우님…?”
“신부님, 저 이영민입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저음이다. 이상하리만치 사람의 감정을 흔들게 하고야 마는 낭랑한 목소리다.
“그러시군요. 세례를 안 받으셨으니까 고해는 받아줄 수 없습니다. 미사 후에 따로 뵙지요.”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남자는 순순히 상황을 받아들였다.
미사 내내 남자는 여자가 앉았던 자리에 있었다. 다행히 여자는 오지 않았다. 만약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쳤다면, 오늘 미사도 엉망이 됐으리라. 마르코복음 1장 12절부터 15절 말씀을 강론했다.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지내신 예수께서 사탄의 유혹을 받았고, 천사들이 시중을 들었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생겨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당신께 순종하기를 원하셨지만, 우리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녀를 다시 구하시고자 우리를 신앙의 세계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느님과 자연과 이웃을 모두 한 가족으로 여기며 살아갑시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남자는 처음 왔을 때처럼 본당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의 조각상만을 응시했다. 봉헌 시간에도, 영성체 때도 묵묵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마침기도가 끝나고 본당 입구에 서 있는 남자와 다시 마주쳤다.
“형제, 자리를 옮길까요?”
“아무 곳이나 괜찮습니다.”
“제 방으로 가시죠.”
남자였기에, 아무도 그를 몰랐기에 편했다. 사제관이라는 게 특별히 비밀스럽거나 신비스러운 곳은 아니다. 성당 바로 앞에 지어진, 남자들이 사는 1층짜리 집일 뿐이다.
“남자들만 사는 집이라 그다지 깨끗하진 않습니다.”
“책도 많고 공부하기 좋아 보이는데요.”
“뭐 마실 거라도…. 우엉차 괜찮으시겠어요?”
“좋습니다.”
인덕션에 물을 끓여 우엉 세 조각이 담긴 컵에 부었다. 소화를 돕는 데 효험이 있다고 해서 시장에서 직접 우엉을 사다가 자르고 말리고 볶았었다. 다시 방에 들어서니 남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론』을 읽고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자주 오지 그랬어요.”
“여러 가지 정리하느라 바빴습니다.”
“어떤…?”
“회사도 다음 달 중으로 정리합니다. 제주도로 내려가려고요.”
“도피… 아닙니까?”
나도 모르게 단도직입적으로 남자를 힐난했다. 여자에게 파국을 선언하고 혼자 살아남겠다고 떠나는 모양새로 비쳤기 때문이다.
“도피라면 도피겠지요. 저도 인생 일대의 모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음성에 순종하고자 말입니다.”
“누가 그렇게 말합니까? 우리 내면의 음성은 잘 구분해야 합니다. 제주도로 가면 생활은 어떻게 하고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상황인 것,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저야말로 믿고 싶은 것과 순종해야 하는 음성을 분별하는데 오래도록 귀 기울여 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실상을 좇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클라라 자매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못 본 지 한 달가량 됐습니다. 미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다릴 겁니다.”
“오늘은 안 왔지만, 요새 성당에 자주 옵니다. 작년 말에 있었던 스캔들도 다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사실 미아는 성당에 다니는 걸 싫어합니다. 성당에 다녀오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모두에게서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극도로 예민해진다고 했죠. 그런 미아가 성당에 왔다면 분명히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다른 누군가에게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어서일 겁니다. 그 대상이 다음 남자라면 더없이 좋겠지요. 제가 압니다.”
남자는 우회적으로 내가 다음 남자라고 지목했다. 말도 안 된다. 상식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술에 취하지 않았어도 막말을 하는 남자가 이해되지 않았다. 거룩한 분노가 말 속으로 녹아들었다.
“오해십니다. 제가 봤을 때는 형제가 큰 잘못을 했습니다. 왜 어머니와 전남편에게 연락해서 자매에게 고통을 줬습니까. 매번 헤어지자고 했다면서요. 술에 취해 진상을 부린 일들은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그렇게 모질게, 못되게 굴고도 하실 말씀이 있나요! 이혼당한 자매가 불쌍하지도 않았습니까!”
“그간의 구체적 과정과 원인은 언급하지 않고 미아는 자기 상처와 처지만을 말하며 저를 비난했을 겁니다. 제 말이 틀렸나요?”
남자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처럼 의연하게, 감정적 동요가 전혀 없이 대답했다. 여자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전부 이해한다는 것처럼, 중립적으로 말했다. 범죄자의 뻔뻔함과는 달랐다. 원죄를 인정하는 죄인의 자세다. 거룩한 전쟁을 위해 봉기한 의로운 십자가군, 바빌론을 저주한 뒤 어린아이와 아녀자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복수에 도취한 이스라엘 군병 같았다.
그런 태도에 당황한 건 바로 나였다. 마치 신부인 내가 정의를 덜 사랑하거나 악에 대해 덜 적대적이라고 지적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현실에서 직접 박해를 겪지 못했고, 현재의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힐책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에 나섰다고 여자를 적대시하고 ‘악’이라고 심판할 수 있는가? 여자는 그저 사랑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던가? 이런 부류들이 여자를 위안부로 삼는 것 아닌가!
“원인이나 동기가 아무리 좋아도 결과가 나쁘면 잘못된 것 아닙니까.”
“제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결과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직 과정입니다.”
“궤변입니다. 상대가 그 일로 상처를 받고 힘들었다면 그 자체도 결과입니다.”
“궤변이고 자기 합리화에 변명이라고 해두죠.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미아에게는 과정입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아니,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회피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삶은 과정인 것을, 상처 극복도 사랑을 배워가는 것도 신앙을 지키는 것 그 모든 게 과정인 걸 거부하는 이유는 상처가 많아서도 지적 수준이 미달이어서도 사랑을 몰라서도 아닙니다. 외롭게 혼자 살아온 미아에게 악한 영들이 덮쳐 아이를 미혹하고 있습니다.”
“악한 영들이라니요?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제삼자 입장에서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 신부님을 찾아온 목적이기도 합니다. 신부님께 간곡히 부탁할 게 있습니다.”
남자는 우엉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여자에 관한 또 다른 고해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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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여자가 대통령이다’는 여성을 대표할 수 없는 한 여자의 유령이 한 나라를 집어삼킨 현재, 이 시대를 살아 내는 한 민초 여자와 동갑내기 신부 박용성, 경마 기자 이영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재소설입니다. 작가는 “간통죄가 합헌이어도, 여자는 위헌”이라며, “우리를 대표한다는 대통령에게, 우릴 창조한 신에게만 유죄라고 통보한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