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기억력이 정확하진 않지만… 참 마음에 남는 대사였어. 묘하게 빗겨간 우리의 이런 상황 또한 슬픈 현실이지만… 버려야 하는 쓰레기가 아닌 값진 무엇이라는 생각을 했어. 비록 큐피드가 우리에게 쏜 화살을 되돌려 달라 할지라도… 반짝이던 별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 확인했어…. 처음부터 한 글자 한 글자 그때 당시의 마음과 상황들이 생생히 스치더라…. 이렇게 소중히 전달해 주어서 먼저 감사한 마음이야. 책 한 권 분량이 넘는 무수한 대화 내용들… 짧아도 깊은 이야기들…. 너의 마음이 움직이는 게 보이고. 나의 마음이 움직이는 게 보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도 보이고…. 참 타이밍이라는 것, 때라는 것이 무슨 운명의 교차로에서 엇갈린 것 같아.
아직 너도 나도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 참으로 힘든 시기이지만 서로 느끼듯 우리 다시 건너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 같아. 서로의 건드려서는 안 될 가장 약한 부위를 찌르고야 말았으니깐.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너도 나도 지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해. 아직 너도 나에 대한 마음 있고, 나도 그렇지만. 그 마음 서로 느낀다 해도 이미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 슬픈 것도…. 이젠 서로 더 독하거나 매몰차지지 말고…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
너라는 영혼을 만난 것 따뜻이 감싸주지 못하고 충돌했음에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닮은 영혼이 존재함을 안 것에 감사하려 해. 내일 제주도 출장 간다지? 미래의 너와 나는 같이 있었겠지만 현실을 사는 나는 너의 평화를 빌어. 부디 제주도 내려가서 마음 다잡고 올라올 수 있기를 기도할게…. 이제 서로 놓아주자. 그래도 살아있음에 숨 쉬어야지….’
말줄임표도 신경이 쓰였지만, 사람을 달래는 척하며 자기주장을 통보하는 교묘한 느낌이 전해졌다. 글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하나님의 사냥개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미아에게 가장 필요한 건 구원입니다. 영원한 행복입니다. 창녀를 찾는 것, 남자를 찾는 것은 실상 그분을 찾아다닌 것입니다. 쉽게 보여서 한번 먹히고 버려질 것 알면서도 기댈 곳을 찾아 몸을 망가뜨리는 일을 반복하는 건 천형입니다. 그때 솔직할 길은 스스로 지옥불로 뛰어드는 것뿐입니다. 사랑을 농락하고 이기심에 마음을 잠가두면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C. S. 루이스가 말했듯이, 비극을 무릅쓰는 일을 피할 유일한 길은 영혼의 멸망입니다. 사랑의 모든 위험과 동요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할 수 있는 장소는 지옥뿐입니다.
하지만 아가페는 죽음보다 강합니다. 반항심 때문에 이미 다시 창녀가 되어 아무와 간음했어도 기다리는 건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상처의 구멍을 메울 수 있는 것은 구원뿐입니다. 아시다시피, 기독교는 행복이 아니라 구원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현세에서 불행해도 견딜 수 있습니다. 영원한 삶에 대해, 신에 대해 믿음이 필요한데도 대부분 사람은 타자에게서 믿음을 요구하다가 사랑에까지 상처를 주는 일을 반복합니다. 사람을 믿지 않는 게 더 솔직하고 자연스럽다고 추앙받는 시대이고, 물론 사람을 믿거나 믿지 않는 건 자신의 선택이고 자유의지입니다. 하지만 사랑하거나 하지 않는 건 개인의 선택이나 자유의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섭리입니다.
저는 그 사람이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신부님께 부탁하고 싶은 건 제가 멀리서 기다리는 동안 아이를 잘 보살펴 주십사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냥개가 되어 주십시오. 제가 보증하건대 분명히 신부님께도 접근할 겁니다. 신부님 스스로를 위해서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런 말 마십시오! 저는 현직에 있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의 종도 사람입니다. 목사도 믿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위장에 능한 악한 영들에 휩싸인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도 침투한 시대라고요.”
“처음 부탁하셨을 땐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불쾌합니다. 마치 제가 이미 악에 굴복한 것처럼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자매가 악한 영혼에 사로잡혔는지 저는 아직 모르지 않습니까? 클라라 자매가 불안하다면 말만 하지 말고, 떠나지 말고 형제가 지키십시오.”
“알겠습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또 뵙죠.”
진이 죄다 빠진 남자는 체념한 듯 간단히 묵례만 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문 앞까지 배웅했지만, 나 역시 더는 말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미혼인 남자와 나는 연애 상담 전문가도 아닐뿐더러 이혼 전문 변호사도 아니기에 공방하다 지쳤을 뿐이다. 여자의 악한 기운이 그를 놓고 대화한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망상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얼른 잠자리에 누웠다.
<다음 호에 계속>
by 이준 -Copyrights ⓒ말산업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자 주
‘여자가 대통령이다’는 여성을 대표할 수 없는 한 여자의 유령이 한 나라를 집어삼킨 현재, 이 시대를 살아 내는 한 민초 여자와 동갑내기 신부 박용성, 경마 기자 이영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재소설입니다. 작가는 “간통죄가 합헌이어도, 여자는 위헌”이라며, “우리를 대표한다는 대통령에게, 우릴 창조한 신에게만 유죄라고 통보한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습니다.
